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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링 15년"전이 오픈했습니다
영균06-23 20:04 | HIT : 5,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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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링 15년_the realing 15 years

     책임기획_김준기
2004_0618 ▶ 2004_0806 / 월요일 휴관

연두_hero_컬러인화_156×124cm_199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사비나미술관 홈페이지로 갑니다.

거리의미술_그림공장_노동미술위원회_두벌갈이_들판_미메시스_믹스라이스_반지하_에이지아이_엠조형_오아시스_유알아트_입김_좋은세상만들기_평화유랑단_플라잉시티 ● 고승욱_구본주_김기수_김준_김창겸_김천일_김태준_김태헌_남일_노순택_노재운_박건웅_박경주_박영균_박용석_박은영_박은태_박장근_방정아_배영환_백기영_설총식_성태훈_소윤경_신창운_양아치_유영호_이경복_이부록_이샛별_이원석_이윤엽_이중재_정연두_조습 ● 공동주최_서울민족미술인협회_사비나미술관 ● 후원_문화광광부_(사)민족미술인협회_(사)민족예술인총연합

● 작가와의 대화_사비나미술관

2004_0622_화요일_04:00pm_현장미술+바깥미술
노동미술위원회_두벌갈이_에이지아이_그림공장_거리의미술

2004_0625_금요일_04:00pm_과정으로서의 공공미술<br>
엠조형_공공문화개발센터 유알아트_믹스라이스_반지하_들판_좋은세상만들기

2004_0629_화요일_04:00pm_개념미술+행동주의
입김_미메시스_플라잉시티_평화유랑단_오아시스

2004_0702_금요일_04:00pm_퍼포먼스, 다큐멘터리 사진
김태준_박경주_정연두_박용석_노순택_김기수_백기영_고승욱_조습

2004_0706_화요일_04:00pm_영상설치+디지털+온라인
김창겸_이중재_노재운_양아치_이부록
2004_0709_금요일_04:00pm_평면회화와 판화
박은태_김천일_김태헌_박영균_성태훈_박은영_방정아_소윤경_이윤엽_박건웅_남일_이샛별

2004_0713_화요일_04:00pm_입체+오브제+개념
구본주_이원석_유영호_김준_배영환_신창운_박장근_설총식_이경복

종합토론_2004_0720_화요일_02:00pm_민예총 강의실

사비나미술관
서울 종로구 안국동 159번지
Tel. 02_736_4371

리얼링 15년, 90년대를 건너온 태도로서의 리얼리즘을 회고함 ● 이 전시 『리얼링 15년』展은 90년대 세대가 만들어낸 ‘태도로서의 리얼리즘’ 15년을 돌아보는 회고적 형식의 기획전이다. 다시 말하자면 지난 10여년간의 한국 현대미술을 반추해봄에 있어서 리얼리즘이라는 예술적 태도를 그 비평적 잣대로 삼겠다는 뜻인데, 전시 제목인 ‘리얼링(the realing)’이라는 말은 현실과 예술의 실천적 결합을 전제로 하는 리얼리즘 미술을 현재진행형의 것으로 파악하기 위해 지어낸 말이다. 이러한 시도는 리얼리즘 미술을 80년대 민중미술로 고착화하거나 양식적 사실주의 개념으로 치부하려는 시각의 한계를 극복하고, 삶과 예술의 간극을 좁히려는 리얼리즘적 태도를 지속가능한 예술 개념으로 복원하려는 데서 나온 것이다. 90년대의 회고를 통한 리얼리즘 개념의 복원이라는 전략적인 발상을 집약해 보자면, ‘민중미술의 시대 이후에 나타난 태도로서의 리얼리즘에 관한 반성적 회고와 비평적 성찰 ’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조습_습이를 살려내라!_컬러인화_2002

배영환_유행가-5월_광목에 약솜, 본드, 옥도정기_117×91cm_1999

1. 80년대라는 거대한 역동의 장이 새로운 미술운동과 맞아떨어진 10여 년 간의 미술 흐름을 규정하는 개념이 민중미술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민중미술이란 정치적 진보를 열망하던 당대 한국사회의 집합의식을 예술영역으로 끌어들인 리얼리즘적 태도인 것이다. 이러한 민중미술을 총망라한 전시가 있었다. 1994년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민중미술15년』展이 그것이다. 우리는 이 전시를 민중미술의 제도권 진입 혹은 진보미술의 장례식으로 평가해왔다. 이렇듯 하나의 전시를 두고 긍정과 부정의 평가가 엇갈리는 것은 민중미술의 흐름을 ‘과거의 것으로 정리할 것인가 아니면 진행형의 것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견해가 어긋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이후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앞선 세대들은 조직적인 미술운동 대신 각자 나름의 길을 개척해왔다. 그들의 선택은 대체로 ‘조직에서 개별로, 큰 이야기에서 작은 이야기로, 중심에서 변방으로, 집중에서 산개로’ 옮겨간 것이었다. ● 근 몇 년 사이에 이들의 활동이 예년보다 더 활발해지고 있는 것은 각고의 시간을 거치면서 창작에 몰두한 세월이 서서히 결실을 맺고 있으며, 지난 시대를 정당하게 평가하고자하는 미술계의 비평적 노력이 시작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선배 세대의 왕성한 미술 현장 복귀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젊은 세대들에게 있어서 리얼리즘 미학은 여전히 비평적 관심에서 비껴나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민중미술을 지난 한 시대의 것으로 보려는 시각과 이것을 보편적인 리얼리즘 개념과 등치하려는 데서 오는 개념적 오류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민중미술=리얼리즘’이라는 도식이 ‘민중미술은 과거의 것’이며 따라서 ‘리얼리즘 또한 과거의 것’이라는 막연한 상상이 젊은 미술인들의 저변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젊은 세대들의 80년대에 대한 부채의식이거나 심하게 말하면 시대적 콤플렉스의 발로이기도 하겠지만, 90년대 세대에게 있어서 민중미술의 강렬한 카리스마는 새 길을 열어나가는 데 있어서 훌륭한 전범인 동시에 정신적 장애로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구본주_혁명은 단호한 것이다_철, 나무_60×35×45cm_1990

이원석_오늘도 아무일 없었다_합성수지에 아크릴 채색_250×200×150cm_2003
이경복_기획창작 공간 산방 프로젝트 작업_2004
이 전시의 가장 큰 목적은 바로 이러한 정신적 장애를 걷어내는 데 있다. 80년대를 경험한 후에 90년대 들어 예술가로 성장한 세대들에게 있어서 ‘과연 리얼리즘은 과거의 것인가’ 하는 물음은 따라서 역사인식의 문제로 소급된다. 역사에 대한 인식이 미래를 열어나가는 데 커다란 영향을 행사한다는 점을 상기해볼 때, 우리의 가까운 과거가 현재의 창작과 비평 영역에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돌아보는 것은 앞길을 열어나가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그 첫걸음이 30대에서 40대 초반에 이르는 90년대 세대의 지형을 살펴보는 일이다. 그 가운데서도 리얼리즘적 태도를 가지고 꾸준히 자기의 길을 걸어온 창작그룹과 작가들을 일별해 보는 일은 앞 세대의 태도와 견주어 그 같음과 다름을 가늠해 봄으로써 단절과 연속의 양면을 살펴보고, 그 속에서 지속가능한 현재진행형의 리얼리즘을 유추해내는 일이 될 것이다. 이것은 리얼리즘이라는 예술적 태도를 ‘민중미술표 리얼리즘’이라는 개념 안에 갇힌 과거의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그것으로 파악해 보기 위해, 80년대 리얼리즘 미술을 밑거름으로 성장해온 90년대의 리얼리즘을 되돌아봄으로써 과거를 근간으로 새로움을 열어낸 궤적들에 대해 비평적 검증을 모색해 보자는 뜻을 담고 있다.


박은태_창원공단에서_장지에 아크릴 채색_150×190cm_1994

영균_86학번 김대리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162×130cm_1996

상에서 말한 바와 같이 90년대의 리얼리즘을 돌아보는 일은 한국현대미술의 당대와 미래를 열어나갈 새로운 대안 생산의 씨앗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이 전시가 목적하는 바, ‘90년대의 회고를 통한 리얼리즘 개념의 복원’이라는 전략을 위해서, 과거를 정리하고, 현실을 점검하며, 이를 통해 대안적 담론 생산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전술적 목표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다. 첫째는 90년대의 리얼리즘 미술 아카이브 구축을 위한 첫걸음을 내디딤으로써 체계적인 연구를 위한 초석을 다진다는 데 의의를 둘 수 있다. 이 전시를 계기로 앞으로 동시대 리얼리즘 미술 관련 자료를 집대성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하여 온오프라인에서 진보적 미술운동의 데이타베이스 역할을 수행하는 ‘리얼리즘 미술 아카이브’ 구축을 모색해 보자는 것이다. 둘째는 90년대 리얼리스트들의 ‘태도로서의 리얼리즘 15년’을 돌아봄으로써 80년대를 잇거나 혹은 새 길을 열어나간 동시대 리얼리즘 미술의 수위를 가늠하는 일이다. 이것은 서로 침묵으로 일관해왔던 서로 다른 장르와 지역에서 활동해온 동시대 리얼리스트들이 공통분모를 찾아 네트워킹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보기 위함이다. 과거처럼 강렬한 정신적 구심이 존재하지도 않거니와 시대를 선도하는 조직이 네트워킹을 주선하는 시대도 아니다. 따라서 창의적인 개별 작가들이 자율성을 근거로 교류할 수 있는 틀이 필요하다는 점, 한 두 사람의 갈망에 그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셋째는 태도로서의 리얼리즘 개념을 근거로 우리시대의 사회적 집합의식에 부합하는 새로운 리얼리즘 담론을 촉발하기 위한 시론적(始論的)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앞선 시대에 대한 평가의 긍정 혹은 부정의 여부와 상관없이 지난 시대의 미술 흐름이 남긴 커다란 족적은 현재에 있어서도 여전히 한국 현대미술계를 지배하는 진영테제로 잔존하고 있다. 이른바 모더니즘 계열과 리얼리즘 계열 간의 간극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서로 다른 그 무엇으로 존재할뿐더러, 포스트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이라는 개념틀로 변질되어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앞선 세대의 낡은 이념적, 정치적 대립을 깨치고 투명한 눈으로 당대를 직시하는 대안적 담론을 열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말한 아카이브, 네트워킹, 대안담론의 세 가지 과제는 단기간의 노력으로 열매를 얻기 어려운 일일 테지만, ‘착수가 곧 성공이라, 맥진할 따름이다’.

전시의 출품작들은 90년대 이후에 본격적으로 예술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한 젊은 작가들의 작업경향 속에 나타나는 리얼리즘적 태도를 찾아내기 위해서 15년간 축적된 구작(舊作)들로 한정했는데, 총16개의 창작소그룹과 35인의 개인 작가들이 각자의 대표작을 엄선해서 출품했다. 칭작소그룹 작가들은 자료전 형식으로 그동안의 활동을 집약해서 선보인다. 대부분이 전시장뿐만이 아니라 현장 참여 작업이나 바깥미술에 방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활동의 성과를 소개하는 자료전 형식으로 관람객들을 만나게 되었다. 창작소그룹에 비해서 활동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개인 작가들의 경우에도 뚜렷한 미학적 관점을 일관성 있게 지속해온 작가들이 많다. 90년대 리얼리스들에게 있어서 탈중심화 한 다원성의 포스터모던한 맥락은 생태, 여성, 소수자, 인권, 복지, 반전, 평화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세분화된 주제의식을 끌어나가는데 매우 유리한 조건을 제공해 주었다. 개인 자격으로 참여한 작가들의 경우 개인전이나 단체전을 통해서 이미 발표했던 구작들 가운데 대표작 한두 점을 골라 출품했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특정 개념의 기획이나 단체전의 성향에 맞추어 작품을 생산해내기도 하지만(사실은 그러한 것들조차도 그 작가의 성향을 규정하는 성과로 쌓이기 마련이다), 꾸준히 작가적 소신을 가지고 선택해온 일관된 주제나 방법을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나름대로의 변모를 꾀하는 연속과 단절의 양면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번 전시의 출품작 한두 점으로 한 작가의 지난 10여년을 가늠하는 데 다소간 무리가 있겠으나 태도로서의 리얼리즘을 구현한 대표작을 통해서 각자의 길을 돌아보고 우리 미술계의 흐름을 읽어본다는 점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시대 선배 세대들의 리얼리즘을 짤막하게나마 회고하는 미니 다큐멘터리도 선보인다. 아직 변변한 데이터베이스나 아카이브가 구축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엄정한 비평적 평가를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점을 시인할 수밖에 없겠다. 이러한 시도 자체가 지난 시대와 당대의 리얼리즘에 관한 차별성과 동질성에 대해 모종의 합의점을 찾는 과정이기를 희망했지만, 그러한 일들은 단기간 내에 하나의 프로젝트를 통해 가능한 것이 아님을 새삼 확인했다. 따라서 이 전시는 앞으로 리얼리즘 미술에 관한 새로운 접근을 끌어내기 위해 보다 왕성한 세대간 대화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우리의 가까운 과거를 돌아보고 평가하며 긍정적인 힘을 끌어내기 위해서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성찰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동시에 담다.

평화유랑단 '평화바람'_반전평화 유랑차_2003 / peacewind.net
이 전시에 참여한 창작단체들은 1990년대 초반부터 활동을 시작한 창작소그룹에서 2004년 올해에 생긴 신생 그룹까지를 망라한 16개 팀이다. 이들의 지향은 동인들 간의 명확한 실천적 합의를 통해서 현장성과 공공성을 발현하는 데로 모아지고 있다. 크게 보아 세 가지 유형으로 묶을 수 있겠는데, 80년대 현장미술의 연장선상에서 서 있는 ‘프로파간다와 바깥미술’, (주민)참여형 교육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과정으로서의 공공미술’, 개념적인 미술 행위와 결합한 ‘행동주의적 경향’이 그것이다. 이상의 세 부류 가운데 80년대식 현장미술과 가장 근접해 있는 것이 첫 번째 부류의 그룹들이다. 특히 「노동미술위원회」는 과거 「민미협」의 산하 조직으로 출발했다는 점에서 직접적인 영향관계에 있는데, 이들의 활동은 90년대 중후반을 정점으로 현재는 소강상태에 있다. 「그림공장」은 90년대 후반에 출발한 젊은 세대라는 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현장미술의 생생한 실천력을 지속해나가고 있다. 「에이지아이」는 ‘agitation(선동)’의 앞 글자를 딴 그룹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포스터, 전시, 출판 활동을 통해 현장성을 이어나갔다. 「거리의미술」은 인터넷 동호회 형식의 네트워킹 시스템을 갖추고 각종 벽화 작업을 펼치고 있는 바깥미술의 대표적인 경우이다. 「두벌갈이」는 개별적인 회화작업 중심의 그룹이면서도 전시 형태에 현장성을 부여하기 위해 전시장을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모색을 해왔다. 두 번째 부류는 (주민)참여형 교육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과정으로서의 공공미술’을 지향하는 그룹들인데, 주민참여나 지역성, 과정으로서의 미술 등의 문제들은 오늘날 새로운 공공미술(New Genre Public Art)의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기도 하다. 「엠조형」은 90년대 초반 이래 벽화와 환경조형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공공미술을 열어나간 선구적인 단체이다. 「유알아트」는 시민참여형 프로젝트를 통해 거리의 미술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믹스라이스」는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영상교육 프로그램을 실행하여 창작으로까지 이어내고 있다. 「반지하」는 인천 지역을 중심으로 주민참여형 프로젝트를 만드는 등 지역성과 공공성을 함께 모색하는 그룹이다. 「들판」과 「좋은세상만들기」는 외딴 시골학교나 농촌지역 등에서 판화와 벽화를 통해 열린 미술을 지향하는 참신한 그룹이다. 세 번째는 개념미술과 행동주의가 결합한 유형이다. 이들은 창작의 결과를 오브제로 한정하지 않고 특정 이슈를 부각하기 위한 퍼포먼스, 축제, 전시, 유랑활동 등을 하고 있다. 개념적 미술행위와 행동주의적 경향이 결합한 이들의 방식은 도시와 농촌 어디이든 삶의 영역을 찾아서 현장실천을 벌이면서 기성의 물질적 생산의 예술 창작이 아니라, 새로운 합의 도출을 시도하는 과정으로서의 예술적 생산을 위해 사회적 퍼포먼스, 시각예술(문화) 교육, 온오프라인상의 전시 등 다양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페미니스트 그룹 「입김」은 페미니즘과 생태주의 등의 이슈를 펼쳐나가고 있고, 「플라잉시티」는 도시주의(urbanism)를 모토로 도시공간의 생태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평화유랑단」은 평화의 바람을 몰고 다니는 행동주의 퍼포먼서들이다. 「오아시스」는 한국사회에서 점거아뜰리에(squat)를 시도하고자 결성된 그룹이다. 「미메시스」는 작가주의 애니메이션을 강조하는 한편 ‘이미지 액트’와 같은 행동주의 미학을 추구하는 그룹이다.
여 작가들의 경우는 미학적 합의를 통해 스스로 강령을 세워 줄기차게 한 방향으로만 밀고 나가는 것이라, 각자의 여건에 따라 시기별로 계속 변모하는 작업 방식을 보여주기 때문에 특정 주제나 경향으로 묶기 보다는 편의상 매체별로 분류해서 ‘퍼포먼스와 사진, 뉴미디어 아트, 평면 작업, 입체와 오브제’ 등 4부류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 번째 작가군은 ‘퍼포먼스와 다큐멘터리 사진작업’을 하는 이들이다. 김태준, 박경주, 정연두, 박용석, 노순택, 김기수, 백기영, 고승욱, 조습 등을 통해 공통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요소는 사회비판적인 다큐멘터리를 포함해서 보다 전향적인 의미의 퍼모먼스를 통해서 리얼리즘적 태도를 풀어내는 사진작업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이 경우는 대부분 같은 다큐멘터리라고 하더라도 작가의 시각에 입각해서 발화자로서의 작가의 지위와 예술가의 수행성을 강조하는 비판적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둘째는 ‘영상설치+디지털+온라인’을 망라한 뉴미디어 아트 작가들이다. 김창겸, 이중재, 노재운, 양아치, 이부록 등은 전통적인 회화와 조소예술의 장르개념을 넘어서서 매체다양성의 시대에 부합하는 리얼리스트들이다. 영상과 설치작업을 비롯해 오늘날 날로 가속화하는 디지털과 온라인 기반의 정보혁신은 시각예술의 생산과 향유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주고 있는데, 이 작가들은 이러한 사이버, 온라인 환경에서도 리얼리즘적 태도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나아가 사이버 리얼리즘 등의 방법들이 훨씬 더 유용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셋째는 ‘평면회화와 판화작업’으로 리얼리즘을 견지하는 작가들이다. 박은태, 김천일, 김태헌, 박영균, 성태훈, 박은영, 방정아, 소윤경, 이윤엽, 박건웅, 남일, 이샛별 등 다수의 화가들이 있다. 유채물감이나 아크릴을 사용하는 작가들과, 먹그림을 그리는 작가들, 그리고 목판화 작업이나 그 분위기를 살려 만화와 동영상 작업을 하는 이들은 여전히 ‘그린다’는 점을 기본으로 예술적 진정성과 리얼리즘적 토대를 지켜내는 경우이다. 이들은 재현회화의 일대일 대응관계를 넘어서 다층적인 회화적 방법들을 찾아내고 있는데, 형상회화의 흐름과 평면 안에서의 매체적 변용을 통해 예술과 현실 영역의 힘겨운 공존을 찾고 있는 경우들이다. 넷째는 ‘입체+오브제+개념’의 작가들인데, 구본주, 이원석, 유영호, 김준, 배영환, 신창운, 박장근, 설총식, 이경복 등은 전통적인 리얼리즘 기법의 소조와 조각을 바탕으로 완성도 높은 입체작업을 선보이는가 하면, 회화를 전공하고도 오브제를 이용해 작업을 하거나 개념적인 입체조형과 설치작업을 병행하기도 한다. 이들은 공공장소에서의 입체 조형을 비롯해서 조경과 가로계획 등 공공영역에서의 시각예술 생산을 접목함으로써 사회와의 접점을 만드는 예술을 지향하기도 한다.

앞서 말했듯이 오늘날 시각예술의 지형을 파악하고 대안적인 담론을 열어나가는 데 있어서 태도로서의 리얼리즘이라는 개념의 유효성은 예술을 형식적 결과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유동하는 정신적 활동의 과정으로 파악한다는 데 있다. 이 때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틀이 있는데, 그것은 리얼리즘을 둘러싼 다양한 개념들과의 다층적인 연관성이다.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형상미술, 민중미술, 민족미술, 현장미술, 공공미술, 진보미술, 행동주의 등 너무나도 많은 미학적, 실천적 개념들이 동시대 미술현장에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것이다. ● 첫째 문제는 리얼리즘과 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 사이의 관계 설정이다. 이미 수많은 비평적 문헌들이 이 부분을 정리해 두었지만, 우리 미술계는 아직도 이 대목에 관한 투명한 합의와 개념적 공유과정을 거치지 못했다. 한국의 당대 시각예술을 읽어내는 여러 시각들 가운데 리얼리즘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다양한 방법을 찾는 일은 중심의 가벼움을 강조하는 탈근대적 맥락에서 보면 일견 고루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리얼리즘과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개념적 혼돈에서 기인한 것이다. 태도로서의 리얼리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자율성 논리를 극복하는 대안적 모색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표(sign)와 기의(significance)와 실재(reality)의 삼각관계 속에서, 모더니즘은 삼자의 분화(分化, differentiation) 과정을 통해서 예술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형식주의 실험으로 빠져들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은 삼자의 분화를 극복하려는 탈분화(脫分化, de-differentiation)의 과정을 통해서 예술영역과 생활영역, 작품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좁히려는 전향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과 리얼리티의 연관은 양자가 추구하는 삶과 현실 속에 예술의 근거를 두고자하는 태도에 있어서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포스트모던 시대의 가장 중요한 미학적 이념 가운데 하나가 태도로서의 리얼리즘이라는 점은(한국사회 현실미술판의 낡은 진영테제와는 전혀 무관하게) 동의할 수 있는 대목이다. ● 둘째는 민중미술과 리얼리즘의 관계이다. 이 전시에 참여한 많은 수의 작가들이 적지 않게 또는 전적으로 80년대 민중미술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두고 민중미술계열의 작가들과 오늘날의 90년대 리얼리스트들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오류의 가능성이 너무 크다. 만약 후배세대 리얼리스트들을 포스트민중미술(post minjung art) 작가로 분류한다면 이는 포스트(post)라는 말의 ‘탈’ 혹은 ‘후기’ 개념과 얽혀 오해의 소지를 낳을 수 있다. 따라서 ‘포스트’의 관점이 아닌, 당대의 관점으로 리얼리즘 미학을 해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민중미술이 80년대라는 특정한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민중미술 작가들의 시대별 변화과정들을 두고서야 얼마든지 포스트 논의의 가능성이 있겠지만) 리얼리즘이라는 개념에 있어서는 포스트 논의라는 게 가당치도 않은 것 아니겠는가. 민중미술이 특정 시대와 상황에 입각한 개념이라면, 리얼리즘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보편개념이라는 점에서 양자의 범주적 구분은 더욱 명확해진다. 민중미술은 실천적으로 여러 갈래의 분파를 이루면서도 내용적 핵심을 요약하자면 시대정신과 호흡하는 리얼리즘적 ‘태도의 문제’로 볼 수 있다. 90년대 리얼리스트들 또한 형식적으로 매우 다양하게 펼쳐져 있으므로 공통분모를 모색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앞선 세대와 마찬가지로 그 핵심을 ‘태도의 문제’로 읽어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민중미술과 리얼리즘을 동시에 언급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유가 아니겠는가.

‘90년대의 태도로서의 리얼리즘(Realism as an attitude)’에 대한 해명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전시는 리얼리즘 미술이라는 큰 틀 안에서 90년대 이후의 미술을 고찰함으로써, 한국현대미술의 변모과정 속에서 민중미술 시기 이후, 그러니까 포스트 민중미술 시기의 패러다임 전환을 모색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민중미술의 시대 이후인 ‘90년대에 접어들어서 리얼리즘 미술이 어떻게 흘러 왔는가’에 대한 계보학적 관점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진화론적 입장에서 본 한국의 90년대 이후의 리얼리즘미술의 계보학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이것은 80년대를 기원의 중심에 놓고 90년대를 후기적 양상으로 파악하는 발생론(evolution theory)의 관점이 아니라, 90년대 자체의 흐름을 꼼꼼히 따져보는 계보학(genealogy)의 관점으로 면밀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야말로 90년대 작가들을 ‘포스트(post)’ 민중미술 논의를 넘어서서, 민중미술 ’너머(beyond)’를 지향한 진정한 리얼리스트로 읽어내는 지름길이 아니겠는가. 80년대이건 90년대이건 시대의 차이에 관계없이 ‘당대성을 전취하는 태도로서의 리얼리즘’과 그것의 현재진행형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링 15년』展은 달리 말해서 '『민중미술15년』展 10년후'展이며, 민중미술을 넘어서 ‘리얼링(real+ing)’하고 있는 90년대 세대들의 궤적을 돌아보는 일이다. 90년대 리얼리스트들은 개념적으로 리얼리즘 미술의 외연을 확대하는 한편, 예술 행위와 생산의 방식에 있어서는 매우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것은 이전 세대들의 리얼리스트들이 정치적 진보주의의 열풍에 휩싸여 감내해야만 했던 이데올로그로서의 역할로부터의 자유로움일 것이다. 또한 그것은 예술적 자율성과 공공성을 함께 가져갈 수 있는 좋은 조건인 동시에 리얼리즘 미술의 터전의 삶의 현장의 역동성이 덜한 악조건으로 파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은 언제나 역동하는 유기체이며, 예술은 변함없이 현실로부터 ‘현장성과 공공성에 입각한 예술행동’을 요청한다. 이것이야말로 태도로서의 리얼리즘을 규정하는 최소공약수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최소공약수를 세 가지로 풀어서 ‘현장성과 공공성, 그리고 행동주의’로 설명하는 것으로 말을 맺고자 한다.

째, 예술개념에 있어서의 현장성이란 생활영역과 예술영역의 절합(articulation)을 시도하는 일련의 비판적 예술 태도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나아가 삶의 현장에 대한 개입(intervention)을 요청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듯 예술적 개입을 요청하는 현실을 마주하는 상황주의적(situationist) 예술 태도 또한 예술적 현장성을 규명하는 기본 요소이다. 이렇듯 특정상황과 장소에 대한 예술적 개입은 통해 얻어지는 현장성은 리얼리즘적인 태도의 근본을 이룬다. 둘째는 탈근대적 예술개념을 가장 탁월하게 집약할 수 있는 개념인 공공성의 문제이다. 공공성은 우리 미술계의 내용적 대안을 모색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화두 가운데 하나이다. 20세기를 지배해온 모더니즘 미술의 대안으로서 사적인 취미의 영역에 머물렀던 예술을 공공의 영역에서 공공적인 방식으로 옮겨놓는 것이야말로 리얼리즘 미술을 모더니즘 미학의 한계와 구분 짓게 하는 확연한 차이점이다. 셋째는 행동주의(activism) 미학이다. 예술적 행동주의는 1960년대에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발생한 개념주의 미술에서 그 싹을 발견할 수 있는 틀이다. 이것은 문화운동과 사회운동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으로 예술과 삶의 영역 분할을 부정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부정의 부정을 거듭하는 아방가르드 미학과 예술적 방식으로 변혁을 꿈꾸는 실천 영역 사이의 만남을 주선하는 것으로, 오늘날 90년대 리얼리스트들이 탈근대적 예술지형 속에서 가장 활발하게 모색하고 있는 예술운동의 방법이기도 하다.

상에서 간략히 언급한 현장성, 공공성, 행동주의 미학 등의 개념들은 사실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미술계의 외형적인 성장에 비해 내용적인 대안 생산이 부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리얼리스트들에 의해 끊임없이 실천의 영역으로 자리잡아온 것들이다. 그렇다면 대안적 예술개념은 이론이 아닌 실천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어져왔다는 셈인데, 이점은 ‘미술운동의 대안적 담론 생산이 절실하다’고 누누이 열변을 토해왔던 많은 이들에게 곰곰이 생각해보아야할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대안적 담론 생산 없이도 실천적인 창작이 존재해왔다는 것은 곧 실천으로부터 대안적인 담론을 모색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는 것의 반증이다. 결국 ‘이론은 실천으로부터’ 나오듯이 ‘대안적 담론은 실천적인 창작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 김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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