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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학번 김대리가 살아가는 법
mygrim ( HOMEPAGE )04-28 22:47 | HIT : 3,743
86학번 김대리가 살아가는 법

-박영균  전시회에서 김대리를 만나다          
                                                    
                                                  서 안 나




박영균 화백은 <86학번 김대리> 씨리즈를 통해 잘 알려진 작가이다. 90년대 초부터 벽화 제작 및 걸개그림 등의 공동제작에 참여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97년부터 4차례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에 참가해 활동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박영균화가의 2002년 개인전과 2004년 개인전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박영균 화가의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화가의 미술전시회 제목 때문이었다. <86학번 김대리>라는 제목을 보면서 386 세대의 뼈아픈 채무감을 다시 떠올려야 했다. 그리고 최류탄 냄새로 가득 찼던 80년대의 대학 캠퍼스를 떠올렸다. 그리고 고향 선배들 중에 학생 운동을 하다가 수배 되어 도피 생활을 하던 지인들을 떠올렸다. 방학을 맞아 고향에 내려가면 선후배들의 만남이 자리가 술자리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가끔은 선배의 골방에서 여럿이들 모여서 피바다라는 비디오를 보기도 했었다. 뜨겁게 사회의 변혁을 바라며 목소리를 높였던 그들의 얼굴들이며 열정적인 분위기들이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내 머릿속에 장면들로 스쳐지나가기도 했다. 그 때의 수많은 김대리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박영균 화백의 <86학번 김대리>는 제목만으로도 무척 상징적이기 때문이었다. 80년대에 적극적으로 투항했던 혹은 소극적으로 흐름에 묻어갔던 80학번 세대들의 내밀한 독백들이 묻어나는 청춘가이기 때문이다.






<86학번 김대리>는 곧 우리들 자신의 모습이다. 반라의 여성이 배경화면으로 깔힌 노래방기계의 화면을 보며 " 솔아 솔아 푸른솔아 ~" 라는 노래를 열창하고 있다. 그 아이러니한 극적 상황 사이에 서 있는 이가 바로 2007년의 김대리의 모습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노찾사의 노래는 데모송으로 학생들을 집결시키고 거부의 이미지와 반항의 상징으로 점철 된 노래이기 때문이다. 그런 노래가 40대 중년에 다다른 86학번의 세대들은, 과거 독재정권과의 힘겨운 싸움에 앞섰던 김대리가 상업성이 강하게 묻어나는 자본주의의 손길에 포획되어 열창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대리는 처연하기 까지하다.  
그림 속의 김대리들은 쇼파에서 뒹굴거나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가끔 회사에서 땡땡이도 치면서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내고 있다. 혁명을 논하던 20대의 열정과 꿈 대신에 회식 분위기를 띄우기 위하여 상사의 비위를 맞추려 울고 넘는 박달재를 부르거나 솔아 솔아 푸른 솔아를 목 놓아 부르고 있다. 김대리는 가장이라는 사회적 책임이 있다. 그가 취한 발걸음으로 돌아가야 할 집에는 살이 적당하게 올라 아줌마 티가 나는 부인이 있다. 바로 그 지점에서 박영균은 386 세대들의 정체성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박영균 화가도 물론 386세대이다. 박영균 화백을 한마디로 소개하라면 현장미술의 마지막 세대라고 거칠게 요약할 수 있다. 80년 시절 노동현장의 시위 행사의 걸개그림과 벽화들을 공동제작하며 몸으로 저항했던 화가이다. 그가 수배 생활 10년을 지냈을 만큼 그림을 통해 자신의 열정을 불태운 작가이기 때문에 그의 그림이 더 호소력을 갖는지도 모른다.  

새가 나를 키운다.
세상에 할 일이 없어서
방문을 잠근 채
생각도 줄이고 생활도 줄이고 뒹굴면서
동물의 왕국이나 보고 있으면
음식을 먹고 싶은 맘조차 달아나 버려
속은 점점 비어 간다.
빈속을 채울 생각조차 없는데
창틈으로 날아온
새가 먹이를 물어다 준다.
꿈처럼 달콤하다.
생이 허기지면
빨간 입을 벌리며 울기만 하면 된다.
새는 나를 먹여 키우느라 힘이 겨운지
나날이 날개가 쳐져 간다.
새가 안타까워 부지런히 날갯짓을 해 보지만
날개는 자라지 않고 부리만 길어진다.
새를 실망시킬 수 없어
먹이조차 거부하고 뱃속을 온통 비워 버린 후
옥상으로 올라가
벼랑 위에 서서
양팔을 벌리면
한없이 가벼워진다.

-전기철, 가시 위를 걷는 법. 전문인용. 2007년 현대시 4월호 발표작-

전기철 시인의 시에서는 새처럼 새장 안에 갇혀진 자신을 인식하면서 일상에 파묻힌 화자를 통해 우리들의 일상사를 날카롭게 꼬집고 있다. 김대리는 휴일이면 외출보다는 집안에서 느긋하게 속옷 차림으로 쇼파 그것도 자신처럼 살찐 쇼파에 앉아 티브이 보기를 즐긴다. 동물의 왕국을 보거나 그도 아니면 베란다에 앉아 담배를 피우거나 아파트 아래의 풍경을 내다보며 하루의 시간들을 정리하기도 한다. 그런 김대리의 모습은 전기철 시인의 시 <가시 위를 걷는 법>에 나타난 화자처럼 새 마냥 자본에 잘 길들여진 체 살아가고 있다.







  80년대가 독재에 저항하던 시대라면 2000년대는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손길에 대항하는 반자본주의적 담론의 시대이다. 회사에서 중간급 관리자가 된 김대리는 점심시간이면 회사 근처의 공원에서 땡땡이를 즐기기도 한다. 벤취에 앉아 늦은 봄 햇살을 쬐거나 잠시 명상에 잠기기도 한다.  10년 동안의 수배생활을 했던 화가의 전적을 살펴볼 때 땡땡이라는 그의 그림에서의 김대리의 행위는 이질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제목의 유머러스함에도 불구하고 현실과 타협하는 인물로 읽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가의 시선에 포착되어 화폭을 가득 채우고 있는 김대리의 얼굴엔 느긋하게 삶을 관조할 줄 아는 여유가 묻어있다. 삶의 관록마저 엿보인다. 적당한 주름살과 출렁거리는 아랫배. 화가는 80년대와 2007년을 살아가는 김대리의 내면의 간격과 틈을 보여주고 있다. 화가는 이 시대에서 살아가는 386세대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세상은 쉽게 싸워서 얻어야 하는 쟁취보다 스스로 자신의 소박한 삶을 끝까지 밀고 나가서 스스로 승리하는 느림의 미학을 택하는 김대리들이다. 그러나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땡땡이에서도 베란다에 앉아있는 남자의 발밑에도 온통 피빛이다. 아직도 베란다에 앉은 사내의 시선은 밖을 향하지 못하고 내부로 고정되어 있다.
80년대에 민중시가 있었다면 2000년대 후반의 시인들에겐 80년대를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가 남는다. 시선의 각도와 굴절에 따라서 그 각각의 시선들을 작품 속에 변용되어 드러나기 때문이다. 선동적이고 구호적이며 문학이 수단화 되었던 민중 문학 대신에 서정성이 강하게 묻어나는 문학이 새롭게 80년대의 역사를 환기 시키고 있다.


-박영균, 탕 거울 속의 입으로만-

봄날 오후 동물원 얼룩말 우리 앞에서
얼룩말 우리를 본 적이 있다
굳게 닫힌 쇠창살 속에서
얼룩말은 제 몸 줄무늬로 만든
또 하나의 창살 안에
스스로 불타는 적의를 감추고 있었다
여름이 가고 있었다

임시직 철폐를 외치며 머리가 깨지던
출근길의 그 사내
교묘하게 감추어진
몸 안의 감옥을 증명하려
머리를 깨어 단단한 창살을 보여주었다
창살 속에 감추고 있던
위장(僞裝)의 역사가
사내의 깨진 머리에서  
줄줄 흘러나오고 있다

-서안나, 위장(僞裝)의 역사. 전문 인용. 시와 문화 창간호 발표작 -

그는 아침 출근 시간 전에 거울 앞에서 이를 닦다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머리를 향해 손가락 총을 겨누고 있다. 거울 속의 입으로만 말이다. 도처에 숨겨진 감시의 눈과 과거의 열정을 발견한다. 총부리가 자신을 향해 있다는 느낌. 졸시 <위장의 역사>에서처럼 출근길에 임시직 철폐를 외치며 머리가 깨어지는 사내를 목격하면서 주체의 발견이 이루어지고 있다. 세상이 숨겨둔 수많은 철창을 내보이는 사내를 보면서 김대리도 온갖 네트워크로 구성된 소비의 패러다임 속에서 주체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의 그림에서 주변의 대상들이 과감하게 생략되거나 원색들을 주로 사용하는 기법을 통해서 화가는 독자의 시선을 김대리의 내면의 갈등에 집중하게 하고 있다. 김대리의 무의식 속에 원색으로 간직된 기억들이 붉은색으로 화면 하단 가득 칠해져 있다. 이러한 반성의 색체는 박형준의 시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가 분신했을 때 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책 안에서 뼛가루 냄새가 난다
희미해진 활자들,
창문으로 다가가 책을 펼치니
하얗고 거대한 안개가 바람에 휩쓸려 파도친다
그가 焚身했을 때 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활자들이 날아간다,
화장터 위에 세워진 도서관
오랜동안 마음속에 두었던 읽지 못한 책을 3층에서 찾았다
그가 분신했을 때 나는 도서관에 앉아 있었다
책을 펼치니 안개가 바람에 흽쓸려 파도친다
숲 속에서 포크레인이 소나무를 싣고 언덕을 내려오고 있다
밑둥이 새끼줄로 묶인 소나무
낮달이 지워진 자리에서 작은 원숭이들이 춤추며 내려온다
도서관 창틀을 딛고서 킬킬댄다
땅에서 바람이 솟구치자 안개가 허공에서 群舞한다
이윽고 다시 땅에 떨어지자 포크레인이 쳐든 삽날 안
창꼬치처럼 서 있는 소나무 허연 뿌리에 매달린다
포크레인이 언덕에서 기우뚱거린다
활자는 희미해져서 군데군데 읽을 수가 없다
도서관 창문에 까맣게 잊혀진 활자들이 몰려오고 있다
뽕짝이 흘러나오는 포크레인,
그를 위해 나부꼈던 輓章,
창문에 들러붙는 송진 냄새,
삽시간에 작은 원숭이들이 포크레인 삽날에 들러붙는다
삽날 안 눈발에 묻혀 소나무가 부활한 것처럼 보인다
책 속에서 시신 타는 냄새가 난다
그를 싣고 오르던 화장터 길에 도서관이 세워졌다
뜰에 원숭이들 뼛가루가 쏟아진다


-박형준, 뼈 위의 도서관 , 전문인용. 2007년 시와 사람 봄호 발표작-

박영균 화가가 김대리라는 인물을 통하여 386세대의 아픔과 내면의 갈등을 나타냈다면 박형준 시인은 <뼈 위의 도서관>이란 시에서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화자를 통해 80년대를 새롭게 환기시키고 있다. 시의 화자는 도서관에서 책이란 화면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오가고 있다. 화자에게 도서관은 책을 읽는 장소라기보다는 80년대 시대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던 반성의 공간이다. 도서관은 분신했던 열사의 시체가 오르고 내렸던 길이었다. 그래서 시인이 읽는 책에서는 시신 타는 냄새가 나고 창에서 검은 활자들이 명부전처럼 흘러나온다. 분신했던 친구의 유령들이 원숭이가 되어 나무 위에서 내려오고 있다. 시의 화자는 소극적인 과거행동의 반성을 통해 도서관은 외연적인 의미망이 새롭게 형성되고 있다. 시인은 살아남은 자의 고통 혹은 살아서도 슬픈 줄 몰랐던 자의 고통을 노래하고 있다.






현실세계에 적응하려 애쓰면서도 내면의 갈등이 얼룩처럼 묻어있는 그들은 기억 속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래서 김대리들은 늘 중심이 흔들린다. 한 발 한 발 앞을 향해 전진하지만 위험하게 도사린 늪 같은 외부가 그를 에워싸고 있기 때문이다.

싱크대 옆 선반 위
물이 담긴 유리그릇 속에서
감자 한 알이 소 눈곱 같은 싹을 틔운다
똑똑한 아기 낳는 법, 이라고 씌어진
두툼한 책장을 넘기다 말고
고추장 김치 돼지고기가 들끓는
찌개 곁에서 아내가 입덧을 한다
햇빛이 잠시 문 밖에서 서성이다
돌아가는 지하 단칸방
식탁 위 선인장이 우울하다

아내는 이곳을 판도라의 상자라고 부르지만
나는 그냥 상자라고 부른다
내 몸은 지상의 모든 발 아래 놓여 있어
늦은 밤 사람들의 발소리가 뚜벅뚜벅
내 깊은 잠 속까지 걸어들어온다

내가 살고 있는 상자는
산 아래 큰 강가의 60층 빌딩보다 높은 곳이지만
주인집 은행나무 뿌리보다도 낮은 곳이어서
외벽에 기댄 은행나무의 뿌리가 내벽에
금을 만든다 땅 속 어디선가
은행나무의 발가락들이 꼼지락거리며
벽을 긁고 있는 것이다

아내의 배 위로 불거진 핏줄이
한가닥 금을 긋는다
아내의 뱃속에는
꼼지락거리는 손가락이 열 개
발가락이 열 개 그리고
바위의 안부를 묻는 빗방울처럼
쉬지 않고 내세를 두드리는
희망이라는 유전자가 하나

-박후기,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실천문학. 2006) 전문 인용-

60층의 빌딩보다 높은 산동네의 지하 방. 임신한 아내가 설설 끓는 고추장 찌개 냄새에 울컥 입덧을 한다. 험난한 경쟁위주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젊은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한 박후기 시인의 시이다. 젊은 부부는 가난한 삶 속에서도 <똑똑한 아기낳는 법>이란 책을 읽는다. 교육은 우리 사회에서 수직적 신분 상승을 실현시켜주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한 미래에의 희망은 감자 눈처럼 가난한 부부의 현실을 개인에게 돌려버리려는 의도가 도사리고 있다. 근면 혹은 희망이라는 단어에 기대어 열심히 살면 잘 살 수 있다는 계몽의 혐의를 지울 수가 없다. 시인은 사실적으로 가난한 부부의 하루를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지하방을 판도라 상자라고 부르는, 피어날 희망을 노래하는 젊은 아내의 목소리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폭력성을 맹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젊은 부부의 꿈이 소박하고 가냘프기에 이 시는 읽는 이로 하여금 더욱 서글픔을 자아내게 한다. 어쩌면 고추장찌개는 곧 구질구질한 현실의 실제적인 냄새인지도 모른다. 화려한 세상의 커튼을 걷어내면 드러나는 문제점들이 피워내는 냄새일 것이다. 아내의 부른 배 위에 푸르게 돋아나는 선명한 핏줄처럼 현실에서 엄마와 아빠는 손가락이 열개 이고 발가락이 열개인 희망의 덩어리인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 아이가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동안 판도라 상자안의 두 남녀도 희망이라는 불씨로 타오를 수 있을 것이다. 2007년의 김대리는 그렇게 우리 바로 이웃에서 자본주의와 대항하며 역사를 준엄한 눈길로 지켜보고 있다.
최근 광주항쟁을 소재로 다룬 “화려한 외출”이라는 영화가 상영중이다. 그리고 2년 만에 시집을 펴낸 이시영 시인의 시집제목과 시 한 편이 떠오른다.

“32년 만에 열린 재심 선고공판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김용원 도예종 서도원 송상진 여정남 우홍선 이수병 하재완씨들은 무덤 속에서 벌떡 일어났다가 다시 누웠다. 그러나 그들의 뼈는 결코 웃을 수가 없었다. 누가 그들에게 젊은 육신의 옷을 입혀줄 수 있단 말인가.”

-이시영, 젊은 그들. 전문 인용.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2007·창비)-




*서안나 약력
1990년 <문학과 비평> 겨울호 등단
시집 <푸른 수첩을 찢다>, <플롯 속의 그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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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6학번 김대리가 살아가는 법    mygrim 2008·04·28 3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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