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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균론-통약불가능한 알레고리, 멜로디에서 화성和聲으로- 박응주
mygrim ( HOMEPAGE )05-09 15:43 | HIT : 4,469
 통약불가능한 알레고리, 멜로디에서 화성和聲으로


‘검사스럽다’와 ‘386스럽다’

21세기의 새정권에서는 주목할만한 두 개의 유행어가 풍미한 적 있다. ‘검사스럽다’와 ‘386스럽다’가 그것이다. 하나는 비젼의 과소함을, 하나는 열정의 과도함을 각각 빗댄 조롱이다. 과연 인사권과 수사권이 동시에 수장에게 부여되어야만 검찰 밖의 외압을 막아낼 수 있다는 검사의 의견은 강남 자체만으로 종합 부동산세를 낮추자고 결의한 구의회의 도원(桃園)결의에 다름 아니었고, 지나친 자신감(김민석) 지나친 도덕적 우월(안희정), 지나친 순박(이철우)의 386들의 일련의 사태는 둘을 같은 압운(“~스럽다”)으로 묶기에 충분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둘이 동시에 하나의 압운으로 묶여 회자된다는 사실에 있다. 그것은 두 “~스럽다”를 동률로 묶어 심판관으로 행세한다. 그러나 그것에는 이미 편파적 판정이 예비되어 있다. 가벼운 익명 혹은 소풍 겸 산보 겸으로서의 ‘다치지 않을 만큼의 쿨한 참여’라는 이 시대의 문화감정이라는 외양을 띤 불편부당(不偏不黨)한 중립적 언사 속에서 이미 ‘검사스러움’은 일편(一偏)의 ‘존중받아야할 견해’로 인정받으며 “빠져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386스러움’은 ‘빠져나가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삼복더위의 한여름에도 벗지 못하는 ‘세계(관)’이라는 거대한 외투를 걸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둘은 정확히 세계관의 차이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글은 이들, 지나치게 두꺼운 ‘외투’를 입고 다녔던 자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끊임없이 자기 현존의 지반을 물어뜯고 그 위에 자기를 세우겠다는 삶의 지표를 내재화한 자들, ‘흰 그늘’ 속에서 의식과 존재를 키워왔던 세대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들은 이 지겨운 외투를 이젠 벗어야할 때인가… 이리저리 재고 있다.  
<노란 건물이 보이는 풍경>은 386들의 이런 지정학적 곤궁함을 쩔쩔매면서 드러내고 있다. “스러움”이 쩔쩔맨다. 우리는 이 ‘정치적 풍경’을 분석해보아야 한다.

2002년 월드컵응원의 물결, 정확히는 87년 민주화를 외치며 시청 앞을 메운 군중의 물결로부터 15년 후, ‘그’는 건물 옥상 모퉁이에 서서 이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한갓’ 축구를 외치며 다시 그곳을 가득 메운 이 물결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비판적인지 호의적인지는 여기서 분명치 않다. 세칭 ‘3S 정책’의 하나인 스포츠를 두고 이는 대중의 눈을 맹목으로 만들게 하는 나쁜 정책의 산물이라 여기곤 했던 비판적인 시선인지, 아니면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힘이 자유로운 분출로 이어지는 역사 발전의 필연을 보고 있는 것이라 여기고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물결에 자신도 가벼운 흥분을 느끼곤 하는 ‘긍정’에 가까운 노랑의 터치(색선)가 전면을 휘감고 있는데서 그의 의중이 은연중 실려 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M. 샤피로가 반 고호의 <까마귀가 나는 밀밭>에 대한 분석에서 묘사했던 바를 떠올리게 한다. 소용돌이 치고 있는 역동적인 하늘 아래 빌딩들이 보이는 소실점으로서의 지평선 부근을 중심으로 격렬한 충동의 노란색 터치의 파편이 난무하게 함으로써 그것은 역원근법의 충만함, 즉 주체에게는 나의 ‘관조’의 투사가 아닌 역광으로부터 쫒기는 신세의 내몰림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세계와의 접촉을 이루고 싶어하는 강박적인 조바심의 경험에 다름 아닌 것이다. ‘충만하므로 조바심난다는 것’, 이 부정할 수도, 긍정할 수도 없는 세계의 표면의 간지러움, 바야흐로 그는 환영 자체 안에서 어떤 것을 실재화해야 할 지점에 당도해 있다. 우리는 이를 ‘그는 세계와의 접촉을 이루었는가, 접신했는가?’하는 질문으로 대체하며 이를 추적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기고자 한다.  왜냐하면 박영균을 포함한 당대의 많은 이 세대의 작가들이 미증유의 ‘미학적 임포텐스’를 겪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며 이는 한때 총체로서의 세계를 신념으로 여겼던 세대들에게 있어서는 여전히 버리지 못한 의미 있는 미학적 갈망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그 행로의 앞과 뒤를 따라가 보는 동행기 정도로서 목표되었다.

색(色)을 견딤

우선 우리는 그가 미술운동가로서의 청년시절을 지나왔던 이력을 들추어 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아름다운 삶을 저해하는 나쁜 세력과의 싸움, 한 개의 생물학적 삶을 다수의 정치적 삶의 한 부품으로 기꺼이 자처하는 삶의 선택을 두고 우리는 ‘운동’이라 불러왔다. ‘아름다운 삶’과 그런 삶을 둘러 싼 내외의 모순은 자연적으로 발생했거나 혹은 우연히 해소되거나 할 종류의 것이 아님을 알고 난 이후, 그에게 ‘아름다운 미술’이라는 말은 하나의 ‘형용모순’이었을 것이다. 즉 그에겐 아름다움의 ‘전제’가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미술’을 하겠다”고 강변하기에는 그는 너무 부정직하지 못했고 약삭빠르지 못했거나 소심하지 못했다. 그런 ‘아름답지 않은’ 미술이 청년 학생 시절의 미술운동 패(‘쪽빛’)에서의 활동이었다. 그는 자명한 현실이나 현존하는 사물 대신에 가능태로서의 유토피아나 형이하의 실재를 그려내는 데 목표를 둔 미술 운동가의 길을 걸어갔다. 그가 일원으로 참여해 공동 제작한 바 있는 ‘경희대 벽화’는 미술이 형이상의 유토피아를 그려내 ‘무기’로서 쓰임을 갖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선전벽화다. 그것은 생산적인 공동체의 사상의식과 생활 정서에 바탕을 두고 건강한 생산의 문화예술을 꿈꾸는 ‘현장미술’의 이념에 포괄되는 미술생산 양식에 직결된다. 1990년, 대학을 졸업한 박영균은 현장미술 활동 지향의 미술동인 <서울민족민중미술운동연합(이하‘서미련’)>에 가입한다.
그 시절 작가의 활동상은 <벽보선전전>이 한 자락을 드러내는 바의 그것이기도 하다. 서미련의 선언문, <이 땅의 미술가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는 “전시장에서 행해지는 소통의 한계, 내용과 형식을 일치시키지 못한 관념성의 한계, 역할 분담이 안 된 상태에서의 소집단이나 개인에 의한 대중성 획득의 한계” 등을 미술운동의 과제로 규정하면서, 따라서 “우리는 이동전을 통하여 우리가 찾아갈 바를 배움터, 일터, 장터, 싸움터에서 민중의 삶과 섞여져, 민중과 함께 싸우는 동참자의 역할을 할 것”이라며 미술운동의 현장성을 명백히 규정하고 있었다. 매일 그려지는 벽보들은 감시의 눈을 피해 게릴라적 행동대에 의해 거리에 나붙여졌다. 그것은 익명적인 삶, 익명으로서의 예술이었다.
지나간 역사는 늘 단순화의 위험 앞에 자신을 노출시킨 채 불안한 삶을 영위하는 법, 당대의 익명적인 삶들은 ‘너무 무겁다’느니, ‘쿨하지 못하다’거니..., 잘도 단순화되곤 했다. 그러나 그 때란 어떤 때였는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안기부’에서 “푸쉬업 3회면 사돈의 팔촌까지도 다 분다”는 때였다. 최소한 3회는 견딜 만큼의 무게보다는 더한 무게를 얹고 견뎌야했던 일상을 그들은 잊었다. 아니 알지 못한다. 그것은 지극한 애도의 대상, 어루만져주어야 할 추억의 대상이라야 옳은 것이다.
필자는 이들 ‘사라진’ 벽보들을 그리워한다. 그러나 그것이 루카치가 얘기한 바의 “당과 인민의 그 어느 위치에도 소속한 바 없이 두 층위를 횡단하면서 높은 미학적 성취를 이루어낸 성과물”이라서 아까워하고 애닲아한다는 얘기를 길게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것은 우리에게, 루카치식이라면 ‘당’의 격이었을 운동의 지도부와 민중이 간격 없는 한 몸이었던 당시 우리 운동의 수준과 그 운동의 동력에 한 방울의 기름이고자 했던 문화선전대로서의 헌신이 최소한 도깨비를 실체로서 포획해냈다는 점만은 기록해두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 때문이다.
그러나 거대한 체구의 도깨비가 '쿵'하고 쓰러지자 그 밑을 지나던 여섯 마리의 벌레와 30여 포기의 풀들이 죽었다. 우리는 그 동식물들을 죽인 죄를 가혹하게 묻고 있으며, 그들은 진실로 미안하다며 '참회'하고 있다. 이를 하나의 질문과 하나의 제안으로 요약해보자.
"그런데 이 단죄는 옳은가?"
"이 참회는 '너와 나의 차이'를 건너는 법, '너와 나의 같음'을 확인할 최소한의 공동체의 덕목을 이미 초과하고 있지 않은가?

어찌됐건 아비들은 도깨비 한 마리 몰아내는 데에 온 힘을 소진한 듯 했다. 90년대, 아비가 '죄값'을 치루고 있는 사이 그 집의 울타리들은 이내 다양한 개성의 아들들이 제각기 심은 다양한 꽃들로 화원을 이루어 실로 만화방창한 포스트모던 시대를 구가하고 있었다.
두 개의 사회 구성체에 대한 입론에 따라, 두 개의 투쟁 방법이 같은 밥상에선 밥도 같이 먹지 않았던 쟁쟁한 열정도, 당파성으로 무장한 헌신적 '투신'으로서 삶의 태도를 결정했던 의기도 사라졌다. 근거 없는 지극한 풍요와 쿨한 애상, 대중소비를 비판하는지 조장하는지 알 듯 모를 듯한 감수성들이 카페의 신세대들로부터 넘쳐났다. 그렇게 개인주의와 다원주의라는 거처할 곳을 '다행스럽게' 찾아낸 새로운 세대들은 파편화되고 분절된 '아비 없는' 소비도시의 새로운 주인으로 살쪄갔고, 아비들은 데카당스로 망명했다.
그도 이제 세월의 힘 앞에 장사 없는 듯, 직장에 취직하여 어찌어찌 '대리' 직책을 감당하고 있다. 여느 날처럼 술 권하는 사회의 직장인인 그는 2차로 노래방에 가고, '생뚱맞게' 운동가요를 열창하지만 또한 생뚱맞은 화면의 영상은 야한 동영상의 여인을 내보내고 있다. 이 사회란 각각의 기원을 갖는 다원(多源)들이 제각각의 알고리듬을 따라 생뚱맞은 전체를 구성하는 모듈이 맞지 않은 기계라는 고발일 터이다. 야한 동영상이 하나의 일관된 기원을 갖는 화면의 순열에 따라 영상을 내보내듯, 김대리가 넥타이 맨 채로 열창하는 운동가요 또한 하나의 일관된 기원에 따라 정해진 순서에 의해 목줄기를 타고 불려지는, 그의 일대기에 이미 주름 잡혀진 것의 ‘펼침’일 뿐인 것. 그리하여 그 두 개의 모듈은 전혀 별개로서 펼쳐진 두 개의 발현일 뿐이다. 김대리가 비감스러운 것은 ‘운동’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선 공권력의 통제도 아니고, ‘좀 더 현실적인 사람이 되라’고 종용한 생활인의 책무 때문도 아닌, 노래방 기기의 모듈과 등가의 것으로 거래된다는 사실 그 자체에서 온다. ‘등가’교환의 악랄함은 “창살 아래 네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는 마지막 고음부를 부르면서, “이 무슨 공허한 놀음인지…”를 점점 더 분명히 느껴가는 교환가치의 미끄러짐에서 절정을 맞는다.
그의 1회 개인전은 이처럼 ‘이미지’의 과도함을 인정하고 들어가는, 늘 한 발짝 뒤쫓아 갈 수밖에 없는 ‘진실’ 혹은 ‘실재’의 과소함 사이의 격차들에 대한 몸부림으로 가득하다. 그것은 강성원이 묘사한 바, ‘과도기로서의 자기시대의 어정쩡함’ 그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 ‘사태’가 결코 거꾸로 수레바퀴를 굴리듯 거슬러 되짚어 갈 수는 없으리라는 것을 하나씩 인정해 가고 있는 중이다. 그것은 색(色)으로 표명되었다. 이는 당대의 ‘동지들’의 작품 경향과 비교되었을 때 확연해진다. 아무리 “우리의 운동은 패배가 아니다!”고 위로와 격려의 말을 듣고 있을 때라도, 움질일 수 없는 열패감은 자아 깊숙한 곳으로부터 자라나와 아무리 잘라내도 이악스런 생장을 거듭하는 계은죽처럼 큰 키로 자라났던 그 시대, 동지들의 그림은 ‘그 시절’의 후일담을 무채색에 담아내곤 했던 것이다. 그것은 색이 보이지 않았던 그 시대와의 연장선, 아니 색을 ‘보지 않으려’했던 방어기제에 가까운 자기 보존 수단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박영균은 색을 인정하고 들어갔다. 그것도 시뮬라크르한 팝적 현실의 형광색이나 순도 높은 채도의 원색을, ‘미군 부대 기지로 내 땅을 내주듯’ 조건 없이 아낌없이 허락했다. <명동성당>이나 <담Ⅱ> <여인> <꿈Ⅰ> <길> 등에서 보이는 색채에의 ‘양여’는 분명 51:49로 주식 분포를 확정짓듯 색채가 그의 예술에서 새로운 지배주주로 확정되었음을 알리는 여실한 증거이다. “예술은 확실히 ‘내용’만으로서는 아닌 듯하다… ‘형식’이 총체적으로 결합되는 어떤 지점일 듯하다”는 그의 일성은 이를 재차 확인하고 있다. 이 말은 그가 창백한 이 풍요로움을 더 이상 패배주의적으로 관조만 하는 데로부터 벗어나 거리에서의 모더니즘과 대결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읽히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여기서 그의 색에 대한 자만에 가까운 자신감을 지켜볼 밖에 도리가 없다.
<명동성당>은 “오냐 그래 너희들의 어법으로, 너희들의 쇼윈도우가 유혹하는 ‘쿨한 도시의 세련’된 색으로 상대해 주마”고 덤빈 경우이다. 박명(薄明)의 코발트, 우수와 쾌활의 중간지점의 칙칙하지 않은 색이 전면을 주도하고 있는 민주화 운동의 표상 명동성당에는 유아적 드로잉의 방법으로 붉은 태양이 떠 있고 흰 색점의 명랑한 비가 뚝뚝 내린다. 화면 아래로는 한 사내가 우산을 받고 정문을 나서며 “그것은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였음을 되뇌이고 있을 법도 하다. 이는 일견 아무러한 주장도 담고 있지 않는, ‘명동성당은 명동성당이요, 우산을 받는 사내는 우산을 받는 사내이다’라는 선문답으로 보이기에 충분하기까지 하다. 아침 식탁에 오른 상추에서 소외된 노동의 흔적은 그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듯이 명동성당에 그날의 흔적은 한 편린도 발견할 수 없고, 해는 쨍하고 비는 뿌리고 명동성당은 여전히 아름다운 것이다.
요체는 ‘사내는 그러한 사실을 보고 왔다’는 사실이다. 이 조각난 권력의 분점, 애초부터 목적하는 바 없는 천지(天地)의 ‘스스로 그러함’을 중년의 사내는 똑똑히 보고만 돌아오는 것이다. 그것은 애상에 젖은 애도의 고별사도 아니고 “그러니까, 무엇이 중요하다”고 힘주어 강조하려는 발언도 아니다. 그곳이 유토피아일지 디스토피아일지 판단을 중지한 채 미만해 있는 색들을 멍한 눈으로 돌아보는 힘이다. 그에게는 지금 화낼 만한 힘마저도 없는 것이다. 어쨌든 그는 혼돈을 견뎌내는 법으로서 그렇게 색들을 ‘견뎌내는’ 방법을 택했다. 여기서 색, 색들을 견뎌냄이란 단어의 임의적 사용이 설명되어야할 필요가 있겠다. 그것은 ‘화면에 도포된 색채’를 지칭하는 탐미적 감각 혹은 그것이 환기하는 색채심리 등을 경영해가는 수완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그것은 통약가능하다고 여겨졌던 386들의 패기가 486으로 전환되면서, 불가능해진 업무처리가 많아진데서 오는 무기력, 386의 정보처리능력을 초과하는 불가항력들이 거리에 넘쳐나는 데서 오는 열패감, 곧 통합의 모든 노력을 ‘내려 놓겠다’는 포기선언에 가까운 의미이다. 한 사건의 국면(局面)이 어찌 그리 많은지, 우리는 왜 완전한 사랑 없이도 잘 살고 있는지, 초록의 담에 기댄 거리의 여인이 신은 부츠가 빨간 색이 아니고 코발트블루인 것이 왜 더 우수를 자아내는지(<담Ⅱ>)에 ‘질려’하며 수동적 견자(見者)의 자세를 취하는 쪽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국면들의 리좀적인 통약불가능성을 색들의 교환불가능성으로 환치시키고 있는 경우이다.  
그러나 모든 사용가치의 흔적을 지우고 교환가치로 환산하는 거리의 색인 ‘뺑끼’를 어떻게 뚫고 나갈 것인지? 그 뺑끼의 배면도 앞의 이면처럼 같을 수 있겠는지? 그는 의심을 연장하고 있었을까? 그것은 양날의 칼처럼 ‘용감하기도,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그는 색의 바다에서 ‘눈’을 잃어버릴 지도 모르는 것이다. 바야흐로 그는 무목적의 바다에 풍덩 빠져있다.

알레고리적 충동

1997년의 1회 개인전과 2002년의 3회 개인전 사이는 그에게 있어 그야말로 ‘노는 해’였다. 이는 물론 99년의 그의 두 번째 개인전을 성과로 여기지 않겠다고 필자가 비평적 선고를 내렸다든지 하는 것과는 전혀 무관한 의미에서이다. 2회 개인전은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 주변 산야의 초목들을 쓰다듬듯 사생한 것들이거나 아들네를 들른 어머니가 스티로폼 박스에 길러낸 화초나 야채를 그린 것들이다. 이는 그가 자신의 예술의 출발점으로 삼았던 울림이었다고 고백하듯, “예술은 삶의 표현이다”는 명제에 대한 훌륭한 변주로서의 격을 충분히 획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는 해’로 간주하는 것은 이 글의 논지 전개상의 필요 때문이기도 하고, 그의 그런 ‘쏘다님’이나 2002년의 3회 개인전 사이의 게으른 빈작(여기서 ‘빈작’이라 함은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제작된 그의 50여점에 이르는 자화상들의 존재를 외면하지는 않겠지만, 일관된 ‘본작업’에 있어서의 손놓은 태업을 이렇게도 불러보자는 것이다)이 그러하며, 또한 무엇보다도 작업을 밀고나갈 추진체를 일순간 상실했던 90년대 중후반기의 사회문화적 혹은 비평적 정체현상의 증후군으로부터 그 또한 자유롭지 못했었음의 증좌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딱딱한 유물론자군에 속했던 박영균이 ‘놀았던 해’는 그런 부력들에 ‘무기력’했던 타율적 계기들과 사물의 다양한 결, 모서리와 꼭지점들의 개수 세기에 흠뻑 재미 붙이며 면(面)이 발견될수록 찍어야할 색점이 많아지는 즐거운 과제들에 감동하며 자신만의 양생술을 체득해 가는 자생적 계기들로 채워져 갔다.

4년여의 외유를 끝내고 돌아온 그의 귀환은 색으로서의 사물의 두께와 색점들로서의 회화적 개입이라는 두 가지의 인식소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그러면서 그것은 외광파적 야외풍경과 소파가 있는 실내 풍경이라는 두 가지의 배경 설정을 통해, 결국 각각이 결합되는 네 가지의 연산의 결과물을 실험하고 있다. 즉 야외풍경에서의 색(사물)의 두께와 색점의 역할, 소파풍경에서의 색(사물)의 두께와 색점의 역할과 같은 식이라는 말이다.
첫째로, 야외풍경에서의 조합을 보자. 필자는 이를 개념과 의식을 보다 전면으로 세우며 그것들의 장악을 용인하는, 실내에서 제작된 1회 개인전의 선원근법 대신 외광파(外光派)의 대기원근법 맛을 알게 된 야외사생(2회 개인전)의 연장선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확실히 2001년에 접어든 발라드풍의 일련의 인물, 풍경들은 사물의 ‘없는’ 윤곽선을 색층의 차이만으로 대신할 수 있다는 클레나 보나르의 시도를 생각나게 하는 바가 있다. <파란 나무가 보이는 풍경> <잠수> 등은 꿈틀거리는 색선이나 색점들만으로 사물의 원근을 포착해내고 입방체의 체적을 떠내고 있다. 색으로서의 현실을 주관의 개입을 최소화한 채 묘사해 보려는 모종의 실험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현실은 색들의 층만으로 구성되었대도 죽은 무기물이기만 할까...? 꼬물꼬물하고 스멀스멀하기도 한 예의 <노랑 건물이 보이는 풍경>에서 보았던 색선의 파편들이 여기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파란나무…> 아래의 신사의 바짓가랭이 쯤에서 넘실대는 색선들, <잠수>의 초목이 대기에로까지 연장된 색굴곡들은 그러나 아무래도 문학적 내러티브를 장판으로 깔아보려는 의지, 인상파적 낭만성에 대한 짝사랑이기 쉬워 보인다. 그것은 혹 전면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너무 견고해 보여서일까… 이제 ‘미술’은 백화점 쇼윈도우에, 패션쇼에, 광고기획사에 다 넘겨주고 말았다는 한 독일 미학자의 일갈 때문이었을까… 그도 그런 난감함을 느껴서였는지 야외풍경에서의 이 조합은 더 이상 실험되지 않고, 소파 풍경으로 전화한다.
<살찐 소파에 대한 일기>로 명명된 일련의 연작들에서 ‘소파’는 무기력한 386을 유혹하는 ‘유혹자’, 그 사내를 ‘소비시키는 기제’를 넘어 “한두 피스의 소파로 남은 사내”로 만들 최종의 ‘고독한 감옥’으로 표상되기에 이른다(<살찐 소파Ⅰ>). 팔베개에 턱을 괴고 비스듬히 누운 인물이 있는 풍경은 흡사 ‘살아 있는 정적’이다. 2천 년 대에, ‘소파’라는 가구가 무슨 ‘부와 안락함’의 상징일 리는 없다. 그러나 ‘촌놈’이 드러누워 보는 소파는 분명 ‘이거 환장하게 좋다’다. 이대로 잠들고 싶은 자장가 그 자체인 것이다. 결국 그에게 소파라는 기제는 앉는 순간 눕고 싶고, 눕자 잠들고 싶은, 무기력을 촉진시켜주는 향정신성 의약품과도 같은 것이었으리라는 상상은 능히 가능하다. 그는 이 소파라는 기제가 한없이 간지럽고 자기의 현재와 닮았다고 느낀다. 그는 소파에서 어서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위눌린 꿈처럼 한없이 빠져들기만 한다. 이는 이들 작품의 문학적 모태이기도 한 황지우 동명의 시(詩)의 진한 페이소스이기도 하다. ‘아침에 일어나 이빨 닦고 세수하고 식탁에 앉아’ 길게 하품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요즘 비참할 정도로 편한’ 시의 주인공은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가로로 쓰러져있는 서가’나 ‘세잔풍 정물화 한점이 걸려있는 거실’의 가짜 가죽소파에 앉아 ‘괘종시계가 내 여생을 갉아먹는 소리를 들으며’ 무위도식을 일삼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이것도 삶이며’,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즉 이 무위는 ‘내가 이 나머지 삶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격조 있게 삶을 되물릴 길’임을 이야기한다. 수족관의 물고기처럼 하품을 해대는 ‘공기족관’으로서의 자신이 속한 공간에 대한 황지우의 비유가 박영균의 몽환적인 ‘소파’, 살아있는 정적으로서의 나른해진 일상으로 공명되고 있는 것이다.
이 정적의 풍경에 색선 파편들이 앞서의 야외풍경 경우에서보다 훨씬 전면적으로 등장한다. 색선 파편들은 TV와 실내의 벽면, 소파의 등받이나 컴퓨터, 프린터, 키보드, 스캐너와 열려진 현관문, 벽기둥 곳곳에서 스며 나오고, 타고 오르고, 휘감아 돌며, 터져 나온다. 정적을 깨뜨려주고, ‘나 아직 살아있다’는 신호 하나쯤은 꺼뜨리지 않고 밝혀두고픈 징표였을까?… 인적 없는 실내의 경건함을 가로지르는, ‘봐라. 세균이 살고 있잖아’라고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무튼 이는 ‘소파’로 상징되는 비참하게 편한 ‘무장해제 장치’에 대한 하나의 변명일 가능성이 높다. 색점, 색파편이라는 자명종이 필요했던 이유는 수동적 견자로서의 무력감에 대한 하나의 변명장치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현실에는 없는 색점이나 색파편들, 이는 물론 우리가 흔히 물감 흘린 자국을 그대로 둔 채로 말라붙게 하는 작품들에서 목격하곤 하는 회화적 맛, 다시 말해 화가의 자명종이자 나쁜 경우에는 화가의 자기 과시의 흔적이 되기도 하는 회화적 의미부여 장치이다.
그러나 이 ‘소파’에서의 색선, 색점들은 단순히 회화적 장치이기에는 너무 엄밀하게 계산되어졌으며, 전면적이고 주도적이다. 2003년도의 한 작품(<살찐 소파Ⅴ>)은 그것이 아예 작품의 주제로 나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내에 사람의 인기척이 없자 파리나 바퀴벌레, 거미 같은 곤충들이 창궐하듯이, 미야자키 하야요가 전해 주는 일본 민담에서의 빈집을 차지하고 있는 스스와타리(숯검뎅이 정령)가 인간과 숨바꼭질하며 제 현존을 드러내듯이, 사물의 두께를 현현케 하는 색점들은 사물들에 개입하며 무수한 알레고리들을 활성화시킨다. 그것은 정치적 중립, 아니 ‘정치적 무정견’으로서의 ‘사물의 사물다움의 제국’에 대한 표상이다. 이 즈음에서 그의 ‘소파’들은 모든 사회학적 연관성을 상실한, 그가 말한 “내용이 아닌 회화”가 된다. [별도로 살펴볼 지면을 얻지 못해 이 자리를 통해 그의 최근의 영상 매체작업을 간략히 언급하고 지나가자면, 그가 ‘소파’를 내다 버리고 그 버린 소파의 운명을 투명하게 만 하루 동안 지켜본 광경을 카메라에 담은 단채널 영상작품(<11월 1일>)이나, 신문에 삽지되어온 광고 전단지를 수십 배로 확대시켜 본 ‘무의미’한 이미지 작업들(<러거킹이 보이는 풍경>)에서는 자폐증에 가까운 중립성, 아니 ‘기계이고 싶다’는 앤디워홀처럼, “나는 백치이고 싶다”를 외치는 듯, 주체를 비우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 그의 소파들이 색점을 통해 ‘변명’의 우산 아래로 완벽히 숨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이러기도 하고, 저러기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발각되기도 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해 보인다. 예를 들면 <살찐 소파Ⅰ>에서 그토록 ‘맥’을 놓은 자세의 인물이 매끼 꼬박꼬박 음식을 챙겨먹고 미적인 관심사로서의 사물의 색을 관조하려는 ‘건강한 성인’의 자세로는 ‘죽었다 깨나도’ 해석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는 점, 선명한 실내와 뿌연 안개로 덮인 창밖의 풍경이 삶과 죽음의 문턱을 환유법으로 암시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는 점, 한없이 넓어 보이라고 깐 격자형 장판의 한가운데를 놔두고 비좁은 포즈를 취하고 있는 소파 위의 인물의 대비가 강박적 심리와 무관하기만 할 것이냐는 점 등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는 손사래를 치며 아무리 뒤로 나앉고 싶어 해도 사회학적 의미연관은 따라 다닌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겐 자신의 회화가 그런 식으로 적당히 ‘사회’를 환기하고 싶었던 것은 애초부터 아니었다는 것을 상기해 볼 일이다. 그가 끝까지 붙들고 늘어진 관심은 색점으로 하여금 색/사물의 다면성을 드러내는 일이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부수의 효과’는 그의 실패인가? 원하지 않은 임신이었나?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그의 의도의 성공과 실패가 핵심사항은 아님을 인정할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의 태도를 취한 주체가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으로 바꿔야 한다. 그것은 알레고리적 충동이다. 따라서 우리는 단지 그의 강한 ‘부정’을 5할만이라도 인정하는 선에서 이 사태를 갈무리한다면, “그렇다. 그는 갈 수 있는 한 가장 멀리까지, ‘내용’의 청년기로부터 ‘형식’의 장년기에로 나아가려 했구나. 시대가 요구하던 형(形)으로부터 세계의 살(肉)인 색(色)을 보려 최대한 멀리까지 나아가려 했구나” 쯤으로 요약할 수 있으리라.

그로부터 2년 후의 박영균의 4회 개인전은 ‘소파’의 외연을 보다 확장시킨 형식적 변주이거나 팝적 매끈함 속에 기호들을 감추고 있는 알레고리적 충동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싸늘하게 드러낸 경우들이라 할 수 있다. 즉 이번 역시도 하나의 중심축에서 이쪽 혹은 저쪽을 향한 두 극단(?)의 방향을 설정해 놓고 한 번 ‘가 본’ 경우들이라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살찐 소파Ⅳ>와 <살찐 소파Ⅵ>들이다. 그것은 압도하는 초록 색점의 벽 앞에 놓인 소파에 앉아 있는 인물을 그린 ‘공간’에 대한 관심 표명이거나 ‘그리기에 대한 그리기’를 주안점으로 삼은, 메타 회화 실험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 ‘실험’의 경우에는 앞서의 ‘야외풍경’의 경우에서 직면하고야 말았던 아포리아의 함정에 걸려든다. 공간 혹은 시간에 대한 단수로서의 외딴 ‘추적’은 그것이 아무리 깊은 공간일 지라도, 아무리 먼 시간일 지라도 결국에는 그 대상에 영향을 미치는 동력학, 즉 정치경제학적 층위를 표백시킨 무공간, 무시간에의 헌신일 뿐임을 증거하고야 만다는 것. 여기에서는 무국적의 지표, 텅빈 기호만이 있을 뿐인 것이다.
후자의 경우로 그가 설정한 것은 <파란 기둥이 보이는 방Ⅰ>이나 <파란 기둥이 보이는 방Ⅱ>에서 보이는 ‘알레고리적 충동’이다. 애초 발터 벤야민이 《독일 비극의 기원》에서 전개했던 ‘알레고리’개념을 그 연원으로 하여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황폐한 공간들에 대한 강조나 파편화된 이미지들의 차용, 즉 기표와 기의 사이의 간극을 이용하려고 하는 충동이 ‘알레고리적임’을 묘파한 크레이그 오웬즈로부터 비롯된 이 용어를 필자는 박영균의 작품들에 있어서의 ‘화사한 우울’, 너무도 밝아, 창백한 우울증을 유발하는 과도한 리얼리티에 대한 비평적 진단으로 제안하고자 하는 것이다. ‘과도한 리얼리티’란 이미 이 글의 기술 속에서 그의 사람됨의 인간적 면모에 대한 힌트로서 독자들에게도 간파되었음직 하듯이, ‘이렇기도, 저렇기도 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찾아질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는 학교의 제자들에게 과제물을 내줄 때에 “다음 주까지 이런이런 점을 고민해보며 드로잉 몇 점을 해오세요” 한단다. 그러면 보다 확실한 걸 좋아하는 어떤 학생은 “선생님, 그러니까 정확히 이런이런 걸 해오라고 하신 거죠?” 하면, 그는 “그래요 그것도 되겠죠” 한다. 또 다른 학생이 “선생님 말씀은 이런이런 거였잖아요!” 하면, 그는 또 “그럴 수도 있고요. 그것도 있고, 또 이런 것도 있고…” 식이란다.
사물 하나하나가 그 어느 것도 아깝지 않은 녀석이 없어, ‘모두에게 최대한으로서의 애정’을 기울인 ‘사해동포주의’가 바로 과도한 리얼리티로서의 <파란 기둥이 보이는 방>이다. 그것은 그 어느 것도 앞줄에 서 있는 사물 때문에 뒤의 사물이 가려짐이 없는 대기원근법이다. 따라서 모두가 동등한 중요성을 부여받은 그것은 필요이상의 조도(照度)에 노출됨으로써 강박신경증을 겪게 되는 것처럼,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가벼운 현기증을 동반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것은 공적(公的)인 것으로의 전환이다. 그곳이 전혀 사적이지 않고 공적인 공간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너무도 공적인 회사, 오늘날의 공기업은 ‘주인’이 없는 것처럼, 파란 기둥이 보이는 방의 주인은 없다. 그 주인들은 침대이기도 하고 컴퓨터이기도 하고 그 세부인 자판이기도, 모니터이기도, 본체이기도, 칩이기도, 칩을 끼우는 슬롯이기도, 슬롯을 조이고 있는 나사못이기도, 나사못의 대가리이기도...하는, 또는 그 모두가 아무도 주인이 아니기도 한 것이다. 기표들은 저희들끼리 짖고 까불고, 웅성거리는 소리로 소란하지만, 그러나 그것들은 단단하고 빛나는 외관 속에 급전직하의 허무의 나락이라는 계기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 그러다 아뿔싸, 언제라도 교환가치의 쓰레기차가 오면 가뭇없이 실려 갈 것들이다.
그것이 그의 기호의 해체전략이다. 그는 끊임없이 대상의 편을 들어준다. 그러면서 축차적으로 앞서의 대상을 평가절하해 나간다. 뒤의 “네가 맞다”면, 앞의 ‘너’는 뭐가 되지?(난 모르겠다!)식일 테다. 대상들의 행렬은 그가 ‘편’을 들어감에 따라 축차적으로 ‘소모’되는 것이다. 그의 기호의 해체란 이처럼 대상의 소모행위를 ‘따라함’으로써 의미를 새롭게 부여하려는 상품미학의 외관을 띠고 있다. 그것은 ‘파란...방’에서, 사물들의 ‘과도한 활성화’를 통한 의미 희박화 전략으로 나타난다. 이는 일견 대상들이 ‘상품’으로 탄생되었던 설화의 진행과정과 동일한 교훈을 인용하는 듯 보인다. 상품들의 교환가치만이 난무하는 세계, 즉 의미작용(signification)들의 예리한 전파들만이 번뜩이는 세계의 비유인 것이다. 이 때의 ‘의미작용’의 보다 친절한 이해를 위해서는 하나의 비유(장 보드리야르)가 필요하다. “여름날 나무그늘”에는 그 아래로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삶이 있고 그 위로는 새가 날아들기도 하던 ‘사용가치’로서의 나무그늘의 세계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섭씨로 환산되는 온도의 폭력적인 내림, 즉 에어컨의 냉기만이 의미 있는 무자비한 교환가치의 세계, 즉 의미작용 세계로 되었다는 비유가 그것이다. 이 의미작용의 만행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는 오늘날의 사물/대상/상품은 거의 완전히 없는 것이다. 그 의미작용의 ‘행위’가 그에게선 대상들의 ‘과도한 리얼리티’다. 대상들의 과도한 활성화에 따라 주체의 진입이 저지되는 지점 즉 인간이 공허로 되는 순간, 급기야 사물기호들 또한 파편적 소산을 면치 못하는 ‘의미의 희박화’에 이르게 된다. 저 혼자 작동하는 컴퓨터, 쉴새 없이 울어대는 핸드폰, 살아있는 듯 꿈적거리는 책걸상, 눈멀 정도로 광채를 발하고 있는 하얀 침대의 시트는 각기 제 물성(物性)을 초과하여 터져버린다. 여기서 그는 실로 손쉬운 ‘뺑끼’를 본다. 손쉬운 죽음에 이르게 할 치명적인 ‘해체’에의 유혹을 본다. 늘 초과된 실재의 행세를 하는 팝적 현실, 그들 사이에 공약수는 없는 것이다.  
여기에 색점, 색선들이 현격히 그 지위를 떨어뜨린 채로 나타난다. 사물들이 주도하는 패권에 일시 양보하고 있거나 조연의 역할로 물러나있는 형국이라는 말이다. 이는 그의 과거 작품들이 지녔던 사물의 문학적 풍유들을 탈각하고 보다 냉엄한 교환가치로서의 사물을 직시하는 모종의 변화로 읽게끔 한다. 그러나 또한 이는 주체를 비움의 방식으로 불러오는 또 다른 수사이기도 하다. ‘소극적인’ 색점들은 주체의 자리의 환기라는 것이다. 주체는 미약한 색점들과 함께 지극히 사적인 자신의 작업실 풍경으로서의 화면으로 진입을 시도한다.
‘색’만으로는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을 수 있었다. 외광만으로는 어둠을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예술적인 것’만으로는 사회를 직유할 수 없었으리라. 피곤에 지쳐 ‘밖’으로부터 돌아온 ‘작업실’은 ‘둘’이 하나로 “드러내다, 감추다” 하고 있음을 그에게 들킨다. ‘살기’가 ‘죽기’보다 몇 백 배나 어려운 것이라는 존재의 속살을 들킨다.
그의 것이 기호를 ‘해체’하고만 있다고 볼 수는 없는 이유가 이것이다. 그가 ‘빈 방’을 그리고 싶어 했다고는 해도 ‘화사한 빈 방, 꽉 찬 빈 방’으로 그려진 이유이다. 그것은 결코 해체의 방편이 아닌 ‘현전(現前)’의 열망을 놓지 않은 채로 그러하다. 저 깊은 곳에 신학적 열망을 품고 있는 한 시대의 형상, 다양성으로서의 전체성을 풍요로운 대상들의 알레고리적 ‘배치’로서 통섭해보려는 열망을 우리는 발견하는 것이다. 진리를 예술로 환치시켜보는 ‘시대착오적’인 근대주의자의 신념을 아직도 지닌 자가 “아우슈비츠로 끌려가는 예술, 예술가들의 행렬!”에 비유한 화사한 멜랑콜리라고나 할까. 그것은 ‘기쁜 순교자’의 그것이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아들의 희망을 위해 놀이를 벌이는 아버지, 그가 사살되기 직전 건물모퉁이로 마지막 모습을 감추기 전에 아들에게 보내는 윙크 같은 것. 사적 몰락과 공적 풍요가 함께 있는 시대의 예술, 예술가의 운명의 비유가 화사한 우울이어야 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어떻게 주인 있음과 주인 없음이, 교환가치와 사용가치가, 단절과 연속이, 다양성과 전체성이 공약수로 약분될 수 있을 것인가! 이 사태들은 이미 통약불가능하다. 바야흐로 그는 이중성의 바다로서의 세계를 알레고리화 한다.

화성악(和聲樂)을 위하여

<파란 기둥이 보이는 방>을 표백된 풍요로 충만한 이 시대에 대한 알레고리적 비유라 결론 삼는다면, 이는 너무 거창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언급한 바, 기실 작가의 작업실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프쿤스 식의, 공산품을 포장지 뜯지 않고 전시장으로 들여와 공장의 아우라가 뚝뚝 묻어난 팝만이 ‘시대’를 비유할 수 있으리라는 견해도 인문학적 물신주의일 수 있어 보인다. 그렇다 그는 소박한 자신의 작업실을 그렸다. 그렇기에 그의 것은 상품 원래의 소모행위를 반복함으로써 의미를 새롭게 부여하고 이것이 대상을 구원하게 된다는 ‘상품조각’들의 전례를 따르지는 않는다고 보아야한다.
그러나 그는 이 ‘편안한’ 작업실에서 분명 사물들의 배반의 소리를 푸른벽 너머로 듣는다. 이 별 것 아닌 풍경을 6m가 넘는 대작으로 그려냈다는 것, 그것이 그의 진솔함이다. 그는 아직 물질이나 상품의 정치경제학적 고리를 전면적으로 고발한다거나 인류구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걸작’을 생산해 내려 하고 있다거나 하지는 않고 있다는 말이다. 단지 물질이 비물질로 되는, 확고한 자명함이 흔들리고 진동하고 있다는 것만을, 자신은 어렴풋이 냄새 맡듯 감각하고 있다는 것만을 그렸을 뿐이다. 이 사태는 정확히 통약불가능성이 가져온 참여적 견자, 혹은 견자적 참여자의 시선 그것이다.
상징적 총체성이라는 모던의 이상이 무너진 폐허에서 그가 꿀 수 있는 꿈, 이를 음악으로 비유하자면, 모두가 함께 각자의 방식으로 ‘도’음가를 내는 화성악(和聲樂)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비유삼아 본다. 멜로디들의 대위법적 병치로서의 다성(多聲)음악이 아니라, 화성들의 위상학적 변주로서의 화성음악이 그것이다. 그것은 ‘어떤 certain 단일성’으로서의 ‘조화’를 지칭한다. 이 때의 ‘어떤’이란 “아직 그 내용은 밝혀져 있지 않지만 특정한 방식으로 규정되어 있는 어떤 것”을 의미한다. 쉽게는, “어떤 관점에서는 그가 옳다”라는 문장에서 ‘어떤’과 같은 경우가 그것이다. 무척도(a-measure)방식으로 통약하려는 그의 의지를 이렇게 불러보려는 것이다. 그것은 통약불가능성의 다른 고백이다. 이 근저에 386의 ‘가난한 곤란’, ‘아무것도 아님의 힘’이 있는 듯하다. 분명 이는 ‘어떤’의 힘이다. 인사권과 수사권이 동시에 한 몸에 주어졌을 때는 문민통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쯤은 민주주의의 원리로서 체득할 줄 아는 ‘검사스럽지 않은’ 포괄적 윤리의 힘이다. 혹은 “세상에 조금이라도 복수심을 갖고 있는 자들의 어쩔 수 없는 천함(황지우)”보다는 훨씬 우월한 ‘무위도식배’의 힘이다. 이것이야말로 그가 세계와 엉킬 수 있는 ‘힘’이다. 그의 사해동포주의에 기대를 가져본다.

         

25  경향신문 김지연의 미술 소환    mygrim 2017·01·14 385
24  경향신문 그날의 광장, 그 뜨거웠던 함성의 기억들    mygrim 2016·05·06 772
23  [김지연의 미술 소환]그 총알들 어디로 갔을까 경향신문    mygrim 2016·04·21 818
22  저기에서 내가 있는 이곳까지-2015년10회개인전서문 김지연 미술비평    mygrim 2015·10·19 1232
21  밝 은 사 회박영균 & 론 잉글리쉬-김영애 서울 오페라갤러리 큐레이터    mygrim 2009·10·17 5079
20  2008 개인전 서문 액티비스트 박영균의 작업실 발(發) 명상 김준기 (미술평론가)    mygrim 2008·11·11 4036
19  빨강풍경과 노랑풍경을 지나 - 김준기    mygrim 2008·05·09 4125
 박영균론-통약불가능한 알레고리, 멜로디에서 화성和聲으로- 박응주    mygrim 2008·05·09 4469
17  열 개의 이웃 프로젝트 리뷰 - 김준기    mygrim 2008·05·09 3703
16  의무를 넘어서-김준기 리뷰 신동아    mygrim 2008·05·09 3763
15  의무를 넘어 - 박응주    mygrim 2008·05·09 3906
14  스무살 청춘의 80년대를 곱씹어내는 화가 박영균- 김준기 2005년    mygrim 2008·05·09 4446
13  86학번 김대리가 살아가는 법    mygrim 2008·04·28 3943
12   2004 네번째 개인전 서문 -김준기-    mygrim 2004·12·05 5035
11  구상화, 시를 타고 돌아오다 [한겨레신문 / 노형석 기자]    관리자 2004·10·14 5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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