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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풍경과 노랑풍경을 지나 - 김준기
mygrim ( HOMEPAGE )05-09 16:16 | HIT : 3,889
빨강풍경과 노랑풍경을 지나


절망을 직조하는 박영균 내러티브 ● 대추리는 사라졌다. 그러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일제시대와 한국전쟁 시기에 이어 세 번째로 삶의 터전을 빼앗긴 대추리 마을 사람들의 거주지는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그곳에서 삶을 꾸린 세월에 대한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박영균은 흙먼지 날리는 토목 공사 현장으로 바뀌어 버린 대추리를 되살려 냈다. 박영균은 대추리의 예술활동을 다뤘으며 그와 동시에 대추리라는 현실을 자신의 예술적 표현 대상으로 끌어들였다.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는 기록과 창작, 행동과 예술의 경계 위에 선 박영균의 정체성에 대해 검토해 보아야할 문제적 상황을 만난다. 그는 예술가의 신분으로 대추리 현장예술을 담는 기록자 역할을 수행했다. 오랫동안 붓을 잡고 살아온 화가인 그가 디지털 캠코더와 컴퓨터를 다루면서 영상 기록과 편집 일을 한 것이다. 박영균은 대추리를 통해서 삶과 예술에 대해서 다양한 세대의 생각을 듣고 보았다. 많은 예술가들이 무언가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도 했다. 동시에 그는 대추리에 예술가로서 개입했고 자신의 체험을 예술로 발화하고 있다.


대추리 예술은 작지만 거대하며, 날카로우면서도 아름답고, 소박하면서도 웅대했다. 대추리 예술가들이 벌인 일들은 우리가 왜 예술을 통해서 소통하고자 하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현장예술은 예술가의 사회적 참여와 심리적 치유, 예술활동의 공공성과 사사성에 관해서 첨예한 논점을 제시했다. 박영균은 2006년부터 「경기문화재단 공모 프로젝트 :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기억」의 일환으로 진행한 「대추리 현장예술 아카이브 프로젝트」에 참가하면서 대추리를 드나들었다. 그는 수많은 예술가들이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하고 있는 현장을 목격하면서 대추리 예술을 기록하고 분석하고 해석했다. 대추리 인근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음유시인 정태춘을 비롯해서 수많은 예술가들이 노래를 부르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박영균은 그 흔적들을 카메라에 담고 그 사람들을 만나 삶과 예술을 이야기했다. 대추리 박영균은 정태춘과 이종구, 노순택, 이윤엽, 김지혜를 만나서 그들과 대화했다. 대추리 마을사람들을 비롯해서 들소리방송국의 활동가들과 대추리 지킴이들을 만나면서 그는 예술과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할 기회를 가졌다.


20대의 박영균은 1980년대 한국사회의 격렬한 현장에서 예술가로서의 첫 걸음을 내딛었다. 국가보안법에 의해 구속수감을 당할 정도로 그는 투쟁의 현장에서 미술로서 시대와 함께 했다. 이후 그는 아파트 거실의 소파를 그리며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그가 서른을 넘기면서 한동안 매진해온 ‘살찐 소파에 관한 이야기’는 사회와 격리된 고독한 예술가 주체의 자화상이었다. 그러한 박영균이 나이 마흔을 넘어서면서 다시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공동육아와 대안학교에 참여하면서 예술과 교육을 이야기했고, 2002년 월드컵과 대선정국을 거치면서 비로소 자신이 다른 세대와는 다른 세대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2006년에는 「아트 인 시티 : 원종동 프로젝트」와 「열개의 이웃 : 의무를 넘어서」를 진행하면서 새로운 공공미술의 흐름에 동참했다. 이어서 2007년에는 「대추리 현장예술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자신이 20대 때 몸담았던 현장미술운동의 21세기 버전을 체험했다. 그는 말한다. “2007년은 나의 예술세계에 대해 반성하면서 뿌연 안개를 걷어낸 한 해였다. 나는 대추리 현장과 작업실을 오가면서 현실과 회화의 괴리를 실감했다. 미술시장에서 말하는 작가의 상표를 만들고 싶지 않다. 무엇에 맞춰서 살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박영균은 이렇듯 예술의 울타리에 싸여서 살다가도 어느새 새로운 자극을 만나 그 울타리를 넘어서곤 한다. 타자와의 명확한 구분짓기는 역설적으로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건네면서 소통을 시도할 것인가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가져다주었다. 그의 대추리 작업은 거실과 소파에 머무르던 자신의 시선을 세상 속으로 파고드는 행동주의 예술가의 새로운 행보를 가다듬은 전환점이었다. 박영균은 대추리를 풍경과 기억으로 되살리고 있다. 특히 그는 빨강 풍경과 노랑 기억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냥 풍경과 기억이 아니고 빨갛고 노란 풍경과 기억이다. 시각예술의 창으로 걸러낸 풍경과 기억이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그는 시각언어를 관통함으로써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캠코더로 대추리를 담아 영상 편집 작업을 했다.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쎌카를 찍고 그것을 디지털 프린트로 뽑아냈다. 붓을 들고 대추리의 풍경과 기억들을 그려 대작 회화 작품을 만들었다. 박영균은 회화와 사진과 영상을 두루 관통하면서 대추리를 둘러싼 박영균 내러티브를 직조하고 실행했다.


가로길이 4미터가 넘는 대작 회화 「빨강 풍경과 노랑 풍경을 지나서」에서 대추분교 앞마당을 지키고 있던 독서하는 소녀상과 경찰, 공원을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파노라마 형식으로 펼쳐진다. 대추분교가 부서지는 빨강 풍경 옆으로 대추리 평화공원의 아름다운 노랑 풍경이 이어지고, 그 옆으로 홍상수 영화의 한 장면이 파랗게 펼쳐진다. 현장과 예술 사이를 관통한 예술가 박영균은 그렇게 풍경과 풍경 사이를 오가며 회화의 창으로 기억을 물질화한다. 들라크로와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모티프로 한 6미터 대작 회화 「자유를 이끄는 카우보이」는 카우보이 앤디가 이끄는 장난감 로봇 군단을 등장시켜 폭력을 발신하는 전지구적인 힘의 논리를 폭로한다. 여기서 기념비적인 영웅인 여신의 이미지를 대체하고 있는 문제적 캐릭터 앤디는 이번 전시에서 박영균 자신이 스스로 연출한 몇 가지 작업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박영균은 서양의 고전을 패러디한 회화작품에 등장시킨 카우보이 앤디를 대추리 현장으로 데려갔다. 디지털 프린트 작업 「앤디」는 작가의 한 손에 쥐어진 카우보이 앤디를 다른 한 손으로 찍은 이른바 쎌카 사진이다. 인형의 뒤로 펼쳐지는 대추리의 사건과 장면들은 폭력의 현장에서 펼쳐지는 고통과 상처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부셔진 대추분교와 농협창고 앞에서 앤디는 멀뚱하게 미소짓고 있다. 불타는 최평곤의 「문무인상」 앞에서 앤디는 태연하게 손짓하고 있다. 세로 캔버스 아래쪽에 얼굴과 상체 일부만을 확대해서 앤디를 그려넣은 「인형을 확대해서 그리다」는 영상과 사진을 관통한 화가가 동일한 대상을 회화로 재현하고 있을 때의 심리상태가 어떤 것인지를 되묻는 그림이다. 여백 부분에 수없이 많은 풀밭 자국을 붓질로 그려 넣은 화가 박영균의 손길은 무슨 이유로 어떤 생각을 하며 캔버스를 매워 나갔을까? 그는 스스로 물었을 것이다. 재현 이상의 재현이 팽만한 시대에 ‘회화란 무엇인가’라고 말이다.


「인형이 보이는 작업실 탁자」에서 박영균은 대추리 이야기를 다시 작업실로 옮겨 놓는다. 초록 배경과 붉은 색 계열의 인물과 테이블 등이 강한 색채대비를 이루는 그림이다. 이 그림을 통해서 다시 확인하건대 앤디는 작가의 삶 속에도 존재한다. 앤디는 대추리 현장뿐만이 아니라 작가의 일상 공간 속에도 깊숙이 베어있다. 박영균은 확실히 색에 대해 강한 애착과 집착을 보인다. 화실에 앉아서 색일 입히고 붓질을 더해나가는 그는 여전히 화가이다. 회화 작업 「앤디」의 메시지는 더욱 간명하게 그림 그리는 사람 박영균을 증거한다. 분홍 배경에 파란 잔디로 양분된 화면 위에 카우보이 앤디가 폼을 잡고 서있고 그 뒤로 대추리 평화공원의 풍경과 그 풍경 뒤에 서있는 작가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 앤디의 좌우를 휘감아 도는 실선들은 공간을 떠도는 유령과도 같은 비가시적 실체의 움직임을 가시화하고 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회화적 재현을 관통한 내러티브가 어떻게 의미를 생산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하는 그림들이다.


화가 박영균은 사진을 거쳐 영상작가로 모드를 전환한다. 그는 영상 다큐멘타리 「들사람들」에서 희망과 낙관을 건너 절망과 비관을 보여준다. ‘들사람들’이라는 이름은 대추리에 베이스 캠프를 치고 이 마을을 오간 수백명 예술가들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들사람들은 단체도 아니고 개인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대추리의 이슈에 동참하면서 창조적으로 연대한 개인들의 네트워크이다. 40분짜리 영상작업 「들사람들」은 지난 2003년 이래 수년간 이어온 평택 대추리 마을의 현장예술을 총망라한 영상작업이다. 「대추리 현장예술 도큐먼트 : 들 가운데서」에 출품했던 이 다큐멘타리는 제도화한 예술의 장 바깥에서 펼쳐진 치열한 현장예술 활동에 대한 헌사이다. 뿐만 아니라 예술과 현장의 관계를 되짚으며 예술가의 열정적인 자기점검을 시도한 박영균 자신의 내면에 대고 외치는 절박한 성찰이기도 하다. 편집자 박영균은 관객의 웃음과 눈물을 예견했을 것이다. 그는 이 영상작업의 대미에 희망과 낙관과 웃음을 주지 않았다. 그는 우리에게 절망과 비관과 눈물을 안겨 주고 있다. 나는 박영균이 대추리를 통해서 다시 한번 절망하고 비관하면서 눈물을 흘리도록 만든 것에 동의한다. 예술은 희망보다는 절망을, 낙관보다는 비관을, 웃음보다는 눈물을 안겨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김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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