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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월간미술 <꽃밭의 역사> 리뷰 - 김준기(미술평론가)
mygrim ( HOMEPAGE )10-14 16:13 | HIT : 624
박영균 : 꽃밭의 역사 리뷰
오늘도 살아냈구나

김준기 (미술평론가)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면서 운다. 딱다구리는 '딱따구르르' 하고, 부엉이는 '부엉부엉' 하고……. 김형경의 장편소설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면 운다』(1993)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소설은 박영균을 비롯한 경희대 미술동아리 쪽빛의 멤버들이 참가한 벽화 이야기를 그 배경으로 삼고 있다. 위장취업자, 탄광촌노동자, 명상센터 운영자, 기자, 교사 등으로 살아가는 386세대들의 좌절과 환멸을 그린 이 작품은 80년대 후일담 소설들 가운데 격이 높은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박영균에게도 그들처럼 좌절과 환멸의 시간이 있었다. 현장미술운동의 힘겨운 나날들, 기나긴 수배의 시간들 그리고 구속수감의 고통을 견뎌내고 나서도, 그에게는 사회에 덩그러니 내던져진 신진 화가의 무기력함이 있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이빨을 닦고 세수를 하고 식탁에 앉았다.’로 시작하는 황지우의 시 ‘살찐 소파에 대한 일기(日記)’를 모티프로 한 소파 연작은 그 무기력한 나나들의 자화상과 같은 그림들이다. 치열한 현장에서 한발 물러난 박영균은 이른바, 일상 담론을 진지한 자기서사로 끌어들여 냉소주의와 비판주의의 절충 지점을 찾아냈다. 새들이 제 이름을 부르며 울듯이, 박영균도 86학번 김대리의 모습을 그림 속에 담아내면서 지난 30년간의 시간을 지내왔다. 386이 586으로 변화하는 시간 동안 그는 사회와 개인, 시민과 예술가, 현장과 일상, 세상과 작업실 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치열한 정체성 탐구의 시간을 가졌다. 80세대의 정체성을 이렇듯 섬세하면서도 장대한 서사로 풀어낸 박영균의 예술은 한 시대의 정치적 격동을 일순간의 사건으로 끝내지 않고 기나긴 시간의 문화적 재생산 과정으로 이어냈다는 점에서 예술과 사회의 공진화 로 평가할 수 있다.

박영균의 자아/세대 정체성 탐구는 지금껏 전모를 공개한 적 없는 자화상 연작을 통하여 온전히 드러났다. 1990년대의 대표적인 자화상, 「노란 바위가 보이는 풍경」에 등장하는 박영균의 아바타 김대리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난 나를 모욕한 자를 늘 관대히 용서해 주었지. 하지만 내겐 명단이 있어……". 그동안 발표해온 자전적 회화들은 김대리라는 대리인물을 통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 것들이었다. 이번 전시에서 1개 층을 할애해서 선보인 자화상들은 갓 스무살의 학생시절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수십점에 달한다. 회화적 표현이 화폐획득의 수단으로 연결되는지라, 잘 팔리지도 않는 자화상을 그리는 화가가 드문 이 시절에, 그의 수많은 자화상들은 ‘아, 이 사람은 역시, 화가로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강렬하게 전달한다.

대학생 시절의 정직한 자화상에서부터, 슬픈 날, 우울한 날, 기쁜 날, 흥분되는 날 등 매일의 감정을 담아서 자신의 모습을 그리되 때로는 역사적 사건의 기록으로서의 자화상을 통하여 일상성 담론 그 너머의 역사성과 사회성을 내비치기도 한다. 기실 1990년대 이후의 한국미술에 나타난 일상성 담론이라는 것이 양적 팽창에도 불구하고 내용적인 면에서 깊고 넓게 일상성 담론으로 진화하지 못했던 것에 비해, 박영균의 일상 작업들은 개인과 사회, 과거와 현재, 공공성과 자율성 사이의 주체로서 예술가 자신이 대면하고 있는 삶의 면면을 치열하게 반추하며 그 핵심을 회화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각별히 주목할 만하다.

박영균은 대표적인 386세대 화가이다.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20대를 보낸 30대 청춘들을 386세대라고 부른 시절이 있었다. 이제 그들도 나이가 들어 30대가 아닌 50대가 되었으니 더 이상 386이 아니라 586이 되었다. 이 세대들은 개발도상국 대한민국이 한창 경제성장을 이루던 시기에 자라났으며,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거치면서 세상을 뒤집어본 경험을 가진 세대이다. 1980년 광주행쟁이 남긴 충격을 자양분 삼아 1987년 6월항쟁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데 기여했고, 그 이후 21세기 촛불시민의 주역으로 여전히 살아있는 세대. 핵심 권력을 쥐고 제대로 한국사회를 운용해본 적이 없으면서도 우리사회의 주류 기득권으로서 왜곡된 힐난과 뼈아픈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는 세대. 이 세대의 정체성을 찾아 청춘에서 중년가지의 시간을 살아온 화가 박영균의 이야기는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이다.

박영균은 민중미술 운동의 마지막 세대이다. 「경희대벽화 - 청년」(경희대 쪽빛, 1989), 「외대 벽화」(서미련, 1990) 등의 현장미술 활동을 시작으로 학생미술운동에 참가했으며, ‘민족민중미술운동연합(건)’의 조직원으로서 활동하다가 수배와 구속 수감을 경험한 현장미술운동의 마지막 세대 박영균은 그 와중에서 집단 창작에만 매몰되지 않고 개별 창작의 진장을 유지했다. ‘저편에서 서성대는 백골단을 짱보면서 골목 모퉁이에서 벽보를 붙이고 있는 순간의 긴장을 포착한’ 「벽보 선전전」(1990)은 청년 박영균의 자화상 같은 작업이다. 청년시절의 이 자화상을 50대 중년 화가의 모습으로 재해석한 작품 「2016년 보라2」(2016년)에서 사회와 조우하는 80세대 예술가의 숙명을 직감할 수 있다. 이러한 태도야 말로 박영균을 현장에서 작업실까지 넓은 눈으로 바라보는 광폭 예술가로 만들어낸 저변의 힘이다.

그림을 그렸다는 이유로 수배와 구속을 당하는 시대가 있었다. 박영균은 그토록 위험한 시대에 전격적으로 운동의 현장에 뛰어들었다. 청년의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던 박영균에게 주어진 것은 구속수감과 미술운동 조직해체라는 강고한 벽이었다. 변혁운동의 퇴조를 실감하며  그는 '86학번 김대리'라는 기념비적인 작품을 발표했다. 세미누드 화면 위로 흐르는 가사에 맞춰 민중가요 ‘솔아 푸르른 솔아’를 부르는 ‘86학번의 김대리’의 비감한 정서를 포착한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 비치는 바, 세상이 변하는대로 몸을 맡겨 흘러가면서도 뭔가 놓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지탱하는 원심력을 박영균은 끈기 있게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정치선전미술의 최전선에서 1990년대 초반 격정의 한국사회를 마주하고 있었으며, 21세기 지금까지도 그 초심을 유지하며 비판적 리얼리즘 회화의 맥을 잇고 잇는 예술가이다.

1990년대라는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나서 그가 만난 것은 대추리였다. 정태춘을 비롯한 1천여명의 예술가들이 미군기지 확장이전을 위하여 대추리마을과 황새울 벌판을 수용하는 데 반대하여 마을을 지키고자했던 주민들의 곁에서, 안보를 위해 주민의 희생을 강요하는 국가의 공공성과 이번 생애에서 세 번째로 삶의 터전을 빼앗기게 된 소수자 마을의 공공성 사이에서 예술가들이 선택은 것은 국가의 공공성보다 마을의 공공성이었다. 박영균은 대추리평화예술운동을 거치면서 정치선전미술 패러다임을 공동체예술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대추리 이후, 박영균의 안테나는 언제나 현장에 닿아있었다. 그것은 민주주의 가치를 중심으로 한 현실정치만이 아니라 생태, 노동, 소수자 등 다양한 사회적 의제와 맞닿아 있었다.

가장 돋보이는 신작은 단연 강정마을 구럼비바위를 그린 대작 「꽃밭의역사-강정」(2020년)이다. 바다에서 섬을 바라본 채 구럼비 바위를 전면 가득 배치한 이 그림은 저 멀리 한라산 아래 서귀포 바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대한 자연파괴 현장을 보라색조로 그려냈다. 바위를 파괴하고 트라이포트를 쌓아놓는 공사현장 한가운데에는 최평곤의 대나무조각 ‘파랑새’도 보인다. 2008년부터 시작된 강정마을 평화예술운동을 기억하게 하는 상징이다. 공사현장을 둘러싼 펜스와 바위에 그려진 붉은 선이 애닲게 눈길을 끈다. 거대한 스케일과 상반되는 촘촘한 붓질로 구럼비바위 곳곳에 마음을 아로새긴 박영균의 손길에 대추리 이후 강정으로 이어진 동아시아 평화의제가 오롯이 담겨있다. 대추리에서 강정으로, 이후 오키나와 헤노코로 이어질 중견 화가 박영균의 회화는 바야흐로 평화예술의 절정을 향해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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