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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들여다 듣는 언덕> 그곳에서 우리가 있는 이곳까지 - 김종길(미술평론가)
mygrim ( HOMEPAGE )10-14 16:22 | HIT : 862
                                                그곳에서 우리가 있는 이곳까지
                                           - 박영균의 ‘빛나는’ 미술과 현실주의 상상력  

                                                                                                           김종길 미술평론가

“현실의식의 능동성은 치열한 역사적 체험에서 그 절정에 이른다.”
_ 「현실동인 제1선언문」(1969)에서

“예술이 주술(呪術)과 결합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_ 오윤, 「미술적 상상력과 세계의 확대」(1985)에서

박영균은 1980년대 후반 서울미술운동집단 ‘가는 패’ 활동을 시작으로 미술운동에 뛰어 들었다. 창립회원들은 선언문에서 “전시장에서 행해지는 소통의 한계, 내용과 형식을 일치 시키지 못한 관념성의 한계, 역할분담이 안 된 상태에서의 소집단이나 동인에 의한 대중성 획득의 한계 등이 미술운동의 과제”라고 판단한 뒤, “이동전을 통하여 우리가 찾아갈 바를 배움터․일터․장터․싸움터에서 민중의 삶에 섞여져 민중과 함께 싸우는 동참자의 역할을 할 것”을 결의했다.
그들은 1987년 <상계동 철거민 지원을 위한 가는 패 열림전>을 시작으로 농촌 장터 순회전을 기획했고, 마을벽화․공장벽화․판화나눔․벽보선전 그리고 걸개그림을 제작하고 전시했다. 걸개그림 <노동자>(1988)는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첫 전국노동자대회를 위해 제작되었는데, 1980년대 후반 수없이 제작된 걸개그림의 한 전형을 창조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이 무렵, ‘가는 패’가 ‘서울민족민중미술운동연합(서미련)’으로 조직이 개편될 때 합류했다.
이번 전시의 가장 앞자리에 걸린 작품들은 바로 그 시기의 것이다. 그는 “날로 커지는 민주화 열기와 군중에 영향을 미치는 예술 활동이 두려웠을까? 당국은 서미련을 이적 단체로 만들어 12명의 예술가들을 구속하였다(서미련이적단체사건). 이 사건 이후, 분하고 억울한 것들을 기록한 그림 몇 작품으로 소환시켰다. 그때 그림 속 모델들이 미술활동을 함께 했던 친구들”이라 밝히고 있다. <벽보선전전>, <유치장에서 파병 반대>(이상 1990)에 등장하는 인물이 그들일 터. 게다가 그는 이때 영향을 받은 ‘북한 미술’에 대해서도 덤덤하게 고백한다. “그 미학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 동안 남한미술이 사회와 동떨어진 예술 지상주의 미술교육과 미술풍토에 반발이 컸고 북쪽의 민족적 형식을 차용한 조선화의 리얼리즘 형식이 당시 나와 미술 운동을 하는 청년들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
1989년 작품 <벽화 앞에서>를 시작으로 1993년 작품 <명동성당 단식하는 사람>까지의 작품들은 그가 현실의 치열한 내부였던 ‘(투쟁)현장’을 기록한 작품들이다. 시대의 목격자, 증언자, 기록자로서의 회화적 위치는 작품의 심미적 깊이나 미술의 미학적 수월성보다 먼저였고, ‘시대’와 ‘현실’이라는 미학적 리얼리티는 사회변혁론과 맞붙어서 혁명의 미학이 되어야 했으므로. 그는 두텁지 않게, 맑고 부드럽게 그러면서도 혁명적 낭만주의의 형식과 내용을 투영시켰다. 그러나 1994년 2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민중미술 15년: 1980-1994>전은 그 모든 운동과 행동과 창작과 변혁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 이전에 민미련(전국민족민중미술운동전국연합)이 해체했고, 미술운동의 아지트였던 그림ᄆᆞ당․민도 문을 닫았다. 그는 현장에서 집으로 돌아갔다.  
<86학번 김대리>(1996)는 그 또래의 청년들이 어떤 삶을 이어가야 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03년 작품 <살찐 소파의 일기5>로 그 시기를 유추할 수 있을 터인데, 시인 황지우는 같은 제목의 시에서 “하루가 또 이렇게 나에게 왔다./ 지겨운 식사, 그렇지만 밥을 먹으니까 밥이 먹고 싶어졌다./ 그 짐승도 그랬을 것이다 ; 삶에 대한 想起, 그것에 의해/ 요즘 나는 살아 있다.”고 묘사하고 있다. 시는 이어진다. “비참할 정도로 나는 편하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이빨 닦고/ 세수하고, 식탁에 앉아서 아침밥 먹고,/ 물로 입 안을 행구고, (이 사이에 낀 찌꺼기들을 양치질 하듯/ 볼을 움직여 물로 헹구는 요란한 소리를 아내는 싫어했다./ 내가 자꾸 비천해져간다고 주의를 주었다.)/ 나는 소파에 앉았다.” 시대, 역사, 현실, 투쟁, 온몸, 현장, 단식, 구속, 외침, 단일대오, 가두행진, 학출, 혁명…. 이런 언어와 구호들은 빠르게 식어갔고, 집으로 돌아간, 아니 직장으로 학교로 유학으로 도서관으로 학원으로 공사장으로 뿔뿔이 흩어진 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일상에 적응했다. 몸과 마음과 정신이 혼미했으나, 삶은 살아지는 시간들을 요구했다. 맞서야 할 적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밀물처럼 신자유주의, 초자본주의, 세계화, 자유화 따위가 깊게 파고들었다.
‘2000년’이라는 시대령(時代嶺)을 넘어가면서 그는 1980년대와 90년대를 성찰하는 깊은 숙고의 시간을 갖기 시작한 듯하다. <노랑 바위가 보이는 풍경-난 나를 모욕한 자를 늘 관대히 용서해 주었지. 하지만 내겐 명단이 있어>(2001)라는 긴 제목의 이 회화는 맑고 부드러우면서 두텁다. 가볍고 날렵하면서 깊다. 울울창창한 산봉우리, 불꽃으로 활활 거리는 벼랑에 서 있는 ‘나’. 거기에 단단히 뿌리박은 나무 한 그루. 어딘가에서 불어오는 바람. 다시, 다시 회화의 세계로 복귀하는 그가 ‘회화의 불꽃’이라는 ‘시천주(侍天主)’를 모시는 순간이랄까. 이 장면에 예수의 광야, 석가의 보리수, 수운의 용담정(龍潭停)이 얼비친다. 이후, 그의 회화는 전환기를 맞는다. 세계에 대한 재사유가 시작된 것이다.
이제 그의 세계는 눈앞의 현실만이 아니었다. 현실의 앞뒤를 꿰뚫어 세계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따져 물었다. 현장은 어디에나 있었으니까. 그의 방에도, 거리에도, 광장에도, 공장에도, 바닷가에도, 산에도, 갯벌에도 있었다. 그 삶으로 파고들어 뒤집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삶의 표면이 아니라 삶의 전체여야 했고, 사건과 사건들이 이어지는 현실의 단단한 구조를 통각적(痛覺的)으로 느끼지 않으면 도무지 파악이 되질 않았다. 그의 회화는, 다시, 그렇게 세계를 향한 미학적 무기가 되었다. 니체가 “생각은 도끼다”라고 했듯이 그는 “회화는 도끼다”를 선언하고 재등장했다. 나는 그 세계를 확인하고 싶었다. 출품작 중에서 몇 점을 골라 생각을 잇는다.

#1. <얼음의 눈물> : “그 빛나는 것이라니”
전시를 위한 작업실 집담회가 끝나자 그는 출품 예정작을 하나씩 보여주었다. 캔버스를 몇 개씩 잇고 펼쳐서 그린 그림들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질 때마다 그가 참여하고 목격한 현실의 배경(背景)과 이면(裏面)이 드러났다. 그가 살아 온 삶의 세계가 민낯의 구체적 현실이라면, 그의 회화는 그 현실과 맞선 미학적 배경(혹은 ‘마주보기’의 우물면)이었고, 들통 난 속내였다. 그가 오랫동안 현실에 참여하고 맞서왔다는 사실을 그의 작품들은 장엄한 회화적 서사로 묵묵히, 그러나 강렬하게 증언하고 있었다.
한쪽에 비켜서서, 수십 년 간 쌓아 올린 그 ‘증언’의 실체들과 감응하며 빠르게 읽어내려(讀破) 애썼다. 그러다가 불현 듯 <얼음의 눈물>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 순간 생각의 앞뒤가 뚝 끊기더니 부서져 버렸다. 그림 속의 눈과 내 눈이 마주칠 때 온몸은 감전되었다. 증언의 외침들이 마음에서 맴돌며 비평의 상상적 얼개가 짜이는 순간이었는데, 삽시간에 흩어지고 말았다. 전율로 그만 얼빠진 벌거숭이가 되었던 것이다. 숭엄한 눈빛에 몸이 텅 비어서 빈탕이 된 꼴이랄까! 사람의 지식 따위로 덤벼들 수 없는 우주적 ‘얼숨’의 거대한 숭고가 턱하니 거기 임해 있었다. 박영균의 회화가 당도한, 아니 도래시킨, 통시적 감각의 미학적 감흥이라니! 빛나는 신화적 영성이라니!      
2015년 제주4․3미술제의 주제는 “얼음의 투명한 눈물”이었다. 그 주제어는 시인 박남준의 <따듯한 얼음>에서 따왔다. 시의 마지막 행들은 이렇다. “쫓기고 내몰린 것들을 껴안고 눈물지어 본/ 이들은 알 것이다/ 햇살 아래 녹아내린 얼음의 투명한 눈물자위를/ 아 몸을 다 바쳐서 피워내는 사랑이라니/ 그 빛나는 것이라니” 4․3을 생각하면 수많은 몸들이 스스로를 바쳐서 피워낸 얼음눈물의 사랑이 떠올랐다. ‘따듯한 얼음’이 주는 역설적 상징과 그 상징이 함축되어서 표현된 “얼음의 투명한 눈물자위”야말로 4․3이 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한 치유의 시적 은유였으므로.  
그로부터 5년이 지났고, <얼음의 눈물>은 그의 주제가 제주의 한 역사적 사건에서 전 지구적이고 우주적인 차원의 사건으로 커지고 넓어졌음을 보여주었다. 이데올로기의 참혹한 갈등과 폭력과 학살의 아수라 현실을 훌쩍 뛰어 넘어서 전 인류와 지구가 처한 치명적 위기에 가 닿은 것이다. 이상기온, 환경오염․파괴, 원전사고, 지구온난화 등의 돌이킬 수 없는 재앙들은 끔찍한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의 뚜렷한 증좌들이지 않은가!
이 작품은 한 토템적 신(神)의 형상을 전면에 등장시킨다. 두 날개를 활짝 펴고 화면 밖의 현실을 향해 ‘이제 그만!’ 혹은 ‘더 이상은 안 돼!’의 보이콧으로 맞서고 있다. 날개 뒤로 펼쳐진 푸른 보랏빛의 지구는 ‘얼음의 투명한 눈물자위’를 엿보이듯 오늘의 지구 상황을 그리되, 모든 것들이 다시 ‘빛나는 것’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멈춤’의 순간이다. 부조화를 조화로 되돌리려는 이 숭고의 치유적 전환이 혜강 최한기가 말한 운화지기(運化之氣)요, 천지지기(天地之氣)의 활동운화일 것이다.    
토템은 “새(桓因)-여신(女神)-푸른 늑대”가 한 몸인데, 작가 스스로 창조한 형상이다. 그런데도 이 여신은 동북아시아 신화적 상징들로 풍부하다. 새를 ‘환인’으로 본 것은 랴오닝성(遙寧省, 요동이라고 불린 옛 고조선 땅)에서 발굴된 한 청동기 유물 때문이다. 돋을새김(浮彫)의 이 유물은 거대한 새(三足烏)가 두 날개 밑으로 호랑이와 곰을 품고 있는 형국이다. 곰 뒤편에는 늑대가 기웃거린다. 단군신화가 완벽하고, 게다가 여신(女神)이다. 본래 환인은 환웅의 아버지로 하늘님(釋帝·天神·上帝)이고, ‘남신(男神)’이다. 단군을 낳은 웅녀, 주몽을 낳은 유화, 혁거세의 부인 알영이 있으나, 한반도에서 창세여신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고조선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시베리아에 ‘마멜디’가 있다. 창세신 고론타가 창조한 이 여신은 땅을 창조했다. 새의 형상이고 남여가 반반이며, 아버지강과 어머니강을 다스린다. 『도덕경』6장에는 ‘신비한 암컷’이자 ‘우주(天地)의 뿌리’인 ‘현빈(玄牝)’이 등장하는데, 박영균의 이 여신 이미지에서 흥미롭게도 그 상징들이 이어진다. 두 날개 끝에 태극이 휘몰아 돌아가고 있는 것을 보라.
푸른 늑대는 흰 사슴과 함께 몽골의 시조신화다. 흰 사슴은 또 성스러운 치유의 신으로서 한라산 백록담(白鹿潭: 흰 사슴 못)과도 이어지니 사뭇 신기하지 않은가. 그 모든 기화(氣化) 작용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現示) 여신이 두 눈 부릅뜨고 우리를 향해 ‘멈추라!’고, 사자후(獅子吼)의 큰 눈빛으로 가로막고 서있다. 여기가 아닌 저기에서. 현실계와 신화계의 사이에서.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의 사이에서. 자칫, 그 차안과 피안도 없이 멸문의 구렁텅이로 빠질 수 있음을 경고하면서.        
  
#2. <저기에서 내가 있는 이곳까지>, <이덕구 산전 가는 길>, <대한문 앞 꽃밭에 관한 리포트>, <꽃밭의 역사> : “과거․현재․미래의 인간운명의 전복과 장난과도 같은 생명 형태의 전화(轉化) 속에 숨어 있는 그 예리한 갈등을 요해(了解)하고, 그것을 군중운명의 역사적 변화와 파괴되고 건설되는 문명발전의 필연적 법칙성을 표현하는 현대적 몽타주로 바꾸어 놓아야 한다.”
이곳은 지극한 현실이다. 모순과 부조리가 판을 치고 거짓과 탐욕과 무지가 난무한다. 차안의 현실에서 정신 줄 놓치지 않고 사는 것은 어쩌면 겨우 사는 것이고, 견디는 것이며, 하루하루 투쟁하는 것인지 모른다. 더군다나 분단의 그늘진 자국마다 이데올로기 깃발을 쳐들고 목청을 높이는 대립으로 사건들은 날마다 일어서는데, 그에 더해서 뒤바뀌는 (나쁜)권력은 그런 크고 작은 사건들을 부추기고 때로 기획하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
그에게 작업실 바깥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여기­저기’는 그런 그늘과 이데올로기와 탐욕과 부조리와 역사와 사건들이 한데로 얽히고설켜서 뿡뿡 거리는 엉망진창이다. 그는 2010년을 전후로 그 현실의 진창을 거대한 회화적 몽타주로 새기기 시작했다. 그에게 여기와 저기는 이승저승이 아니고, 차안과 피안도 아니었다. 오롯이 이곳저곳에서 터지고 빠지고 깨지고 충돌하고 솟나는 쌩쌩한 현실일 뿐이었다. 그 기막힌 현실을 마주하지 않고서는 도무지 다른 그 무엇을 상상할 수 없었다. 회화는 그래서 여기저기 이곳저곳의 진창을 잇기 시작했다.
2014년의 <저기에서 내가 있는 이곳까지>는 한진중공업 사건의 현장(저곳)에서 그의 부천 작업실(이곳)까지를 이은 것이다. 사건은 영도조선소 생산직 노동자 400명을 정리해고하면서 시작됐고,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에 돌입하자 전국에서 희망버스가 부산으로 향했다. 사건은 2010년에 터졌으나, 그는 수년을 사유하면서 그 사건이 불러일으킨 어떤 민중적 현상, 민중적 상황, 민중적 동요를 그리기 시작했다. 사건의 회화적 재현 따위로는 그 실체의 전모를 알 수 없었으므로.
사태는, 사건은 수많은 인과적 원인들이 응집되어서 터지는 것일 텐데, 그 원인의 맨 아랫자리에 1931년 을밀대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편 강주룡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49명 우리 파업단의 임금감하를 크게 여기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결국은 평양의 2천3백명 고무공장 직공의 임금감하의 원인이 될 것이므로 우리는 죽기로서 반대하려는 것입니다. 2천 3백명 우리 동무의 살이 깎이지 않기 위하여 내 한 몸뚱이가 죽는 것은 아깝지 않습니다.” 그 뒤로 1971년 11월 13일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치루고 분신한 전태일이 있겠고, 또 그 뒤로는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비롯해 헤아릴 수 없는 노동자들의 외침이 쌓이고 쌓였을 것이다. 그 외침의 ‘한바람’이 김진숙에 가 닿지 않았겠는가. 회화는 그가 사건을 접한 작업실에서 부산역, 영도조선소, 그 사이사이, 무너진 현실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현실, 그것들을 이어서 불고 불어오는 바람 무늬와 선들을 그리고 있다.
“불고 불어오는 바람 무늬와 선”은 무엇일까? 최근 10여 년간의 작품들에서 눈에 띄는 것은 사건의 회화적 몽타주만이 아니라, 어떤 바람․어떤 공기․어떤 숨․투명한 무늬, 그리고 불현 듯 화면을 종횡 무진하는 선들이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덕구 산전 가는 길>의 ‘이덕구 산전(山田)’은 제주 4․3 유적지이다. ‘시안모루’, ‘북받친밭’으로 알려진 사려니숲길 속의 그곳은 숲이 울창해서 한 낮에도 걸어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다. 2014년, 갑오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이던 그 해, 필자는 예술 감독으로 그와 그 숲길을 걸었다. 이덕구는 4․3 당시 한라산으로 들어가 인민유격대 지대장으로 활동했고 후에 사령관으로 싸우다 죽었는데, 1949년 봄에 잠시 그 밭에 주둔했던 것. 움막을 지은 흔적, 음식을 해 먹던 무쇠 솥, 깨진 그릇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는 그 숲길을 걷다가 누군가와 마주쳤다. 없이 있는 그 누군가와 마주했던 순간이 그에게 있었던 것이다. 역사의 저 건너편을 현실의 여기로 불러내어서 상상할 수는 있어도 어떤 실재의 그림자를 확연히 느끼거나 본다는 것은 예술가 샤먼이 아닌 이상 불가능한 일이다. 회화는 그래서 녹음 우렁찬 색색의 숲이 아닌 푸른 보랏빛 ‘그림자 풍경’이다. 하늘과 땅을 잇는 나무 세 그루가 밝은데, 흰 그늘의 한 여성이 중앙에 섰다. 그 위로 두 개의 빛이 환하다. 무(巫). 두 개의 영혼이 회오리로 휘몰아 가는 순간이 신 내림이요, 신을 받는(接神) 순간이니, 딱 그 순간에 직면한 것일 터.
그런데 그 무한의 한 찰나에서 그가 본 것은 숲을 둥둥 떠 다는 바람비닐 몇 개와 그것을 안은 여성이다. “불고 불어오는 바람비닐”이 여기서도 등장한다. 숨 가득 불어넣어 터질 듯한 아주 얇고 가벼운 비닐바람. 현실의 이면에 딱 붙어서 후경(後景)을 이루는 저 너머의 세계는 아주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비닐바람은 여기와 저 너머 사이를 흐르는 영묘한 기운(靈氣)이거나, 이 현실이 그나마 견디고 살아가는 숨구멍일지도 모를 일이다. 사려니숲의 산전을 흐르는 기운. 그가 회화로 드러내려 했던 핵심은 그게 아닐까.
<그 총알들 어디로 갔을까>의 숲도 그런 기운들이 전하는 하나의 전언이요, 공수일 것이다. 현기영은 『순이삼촌』에서 “당신은 그때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다만 삼십년 전 그 옴팡밭에서 구구식 총구에서 나간 총알이 삼십년의 우여곡절한 유예를 보내고 오늘에야 당신의 가슴 한복판을 꿰뚫었을 뿐이었다.(94쪽)”라고 하지 않은가.  
<대한문 앞 꽃밭에 관한 리포트>는 2014년부터 18년까지 5년 간 펼쳐진 한 꽃밭의 역사다. 대한문 앞의 자투리땅은 이쪽저쪽의 사람들이 서로 차지하며 싸운 투쟁지였다. 천막이 서고 농성이 일고 단식이 진행되었고, 삽시간에 철거되는 수모가 있은 뒤로 꽃밭이 들어섰다. 아주 작은 그 꽃밭은 접경지와 다르지 않아서 경찰이 에둘러 지키는 성지가 되었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그 안에 무정부를 세울 수 없다. 사건의 발단은 토끼몰이 학살진압에 있었다. 용산참사에서, 쌍용차 공장에서, 촛불에서 나쁜 권력은 ‘5월 광주’를 재현했다. 몽둥이를 들고 철거민들을, 노동자들을, 그리고 시민을, 아니 그들이 수호해야 할 국민을 내리쳤다. 폭력에 맞서기 위해 대한문 앞에 무정부를 세웠다. 그는 그 아름답고 숭고한 꽃밭(?)을 총천연색으로 그린 뒤, 참사의 장면들을 또한 그림자 현실로 몽타주했다. 아, 그런데 이 그림에도 마치 쑤욱 빨려 들어오듯 휘황한 빛덩이가 토끼몰이를 하는 장면을 비추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 거대한 모뉴먼트처럼 플라스틱 하나가 떡 하니 자리 잡았다. 부재다. 없이 있는 그들의 큰 자리다. 장면들은 폭력과 오체투지와 꽃밭과 애도와, 그 사이사이, 우리 현실 다공적 공간들과 장소들로 가득하다. 공간은 추상이고, 장소는 체험적 실재다.
‘꽃밭’의 사유는 구럼비로 이어졌다. <꽃밭의 역사>는 구럼비의 역사다. 화면은 횡으로 펼쳐져서 장대한 한라산의 신비로운 초월적 풍경을 그리고 있다. 영속의 세월을 산 저 산이야말로 삶의 진실이요, 신화이며, 역사라는 듯이. 그런데 어느 순간 산하의 허리를 끊어서 그 밑둥을 파헤치더니 1킬로미터 너럭바위를 깨부수기 시작했다. 생물권 보호구역으로 여럿 지정된 강정바다와 해안과 바위는 무참히 부서졌다. 그는 그 파괴의 장면들을 선홍빛 핏빛으로 새겼다. 부처는 깨닫고 난 뒤, 첫 마디로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이 멸한다고 했다. 연기(緣起) 아닌 것이 없다. 구럼비의 주검은 반드시 다른 아픔으로 우리에게 되돌아 올 것이다.  
      
#3. <자화상> : “그곳에서 이곳으로”
1987년에 그린 22살의 그를 본다. 안경을 쓰고 비스듬히 앉아 ‘나’를 보는 그와 마주한다. 그는 붉은 배경을 뒤로 하고 앉았다. 어수룩하고, 결기도 있고, 불안하고, 기가 산 것도 아닌 한 청년이 있다. 마치 그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이 묵묵부답이다. 니체는 “우리를 부수고 바꿀 수 없는 생각이라면, 쓸데없다.”고 했다. 청년 박영균은 붓을 들고 현실로 뛰어 들어서 부수었다. 그의 몸과 붓은 하나의 사상이었고 투쟁이었다. 그러나 그가 현실의 바깥에서, 그러니까 현실의 가장자리로 돌아가 재사유한 현실의 실체는 단지 표면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배경과 이면의 부조리한 속내들이 서로 권력의 구조가 되어 스크럼 짜듯 카르텔을 이룬 현실과 마주했다. 민중, 민족, 분단, 노동, 통일, 민주, 독재 등의 구조가 표면의 그물망이라면 그 밑으로 자본/초자본, 식민/탈식민, 세계화/신자유, 이주/디아스포라 등이 가벼운 심층이고, 그 밑으로 더 내려가면 자연, 환경, 생태, 기후 등이 얽혀 있다. 그것들을 위아래로 관통하는 것들이 신화, 역사, 이승저승, 우주 등이다. 그는 세계의 구조와 회화의 구조를 사유하면서 그런 다층적이고 다원적인 시선의 미술로 나아가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회화는 언제나 ‘이곳’의 현실을 본다. 위에서 언급한 그 모든 개념어들은 지금 이곳의 차안을 위해서다. 차안의 현실에 피안을 도래시키지 않으면 미래는 없기 때문이다. 그곳이 아닌, 바로 이곳이 우리가 살아야 할 현실이고 세계이기 때문이다.


         

31  2021 <보라색 언덕 너머 Beyond the purple hill>보라색 언덕 너머, 하늘 끝까지 따르리라-김허경(미술비평)    mygrim 2021·11·29 836
30  2020 <들여다 듣는 언덕> 박영균과 박영균 사이 - 최범(미술평론가)    mygrim 2021·11·29 800
29  2020 <들여다 듣는 언덕> 그때 박영균이 있었다 - 양정애(미술이론)    mygrim 2021·10·21 864
 2020 <들여다 듣는 언덕> 그곳에서 우리가 있는 이곳까지 - 김종길(미술평론가)    mygrim 2021·10·14 862
27  2020 <꽃밭의 역사> 전시 서문 - 김정연(큐레이터)    mygrim 2021·10·14 867
26  2020 월간미술 <꽃밭의 역사> 리뷰 - 김준기(미술평론가)    mygrim 2021·10·14 826
25  경향신문 김지연의 미술 소환    mygrim 2017·01·14 4199
24  경향신문 그날의 광장, 그 뜨거웠던 함성의 기억들    mygrim 2016·05·06 8289
23  [김지연의 미술 소환]그 총알들 어디로 갔을까 경향신문    mygrim 2016·04·21 4557
22  저기에서 내가 있는 이곳까지-2015년10회개인전서문 김지연 미술비평    mygrim 2015·10·19 4360
21  밝 은 사 회박영균 & 론 잉글리쉬-김영애 서울 오페라갤러리 큐레이터    mygrim 2009·10·17 8782
20  2008 개인전 서문 액티비스트 박영균의 작업실 발(發) 명상 김준기 (미술평론가)    mygrim 2008·11·11 5956
19  빨강풍경과 노랑풍경을 지나 - 김준기    mygrim 2008·05·09 6109
18  박영균론-통약불가능한 알레고리, 멜로디에서 화성和聲으로- 박응주    mygrim 2008·05·09 6484
17  열 개의 이웃 프로젝트 리뷰 - 김준기    mygrim 2008·05·09 5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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