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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들여다 듣는 언덕> 박영균과 박영균 사이 - 최범(미술평론가)
mygrim ( HOMEPAGE )11-29 22:57 | HIT : 799
                                                    박영균과 박영균 사이
                                            - 후일담미술에서 ‘성찰적 리얼리즘’으로  

                                                                                                           
                                                                                                         최 범/ 미술평론가

-역사적 숭고와 사회적 풍경화
용광로에서 쏟아져 나온 쇳물처럼 붉은 물결이 네거리에 넘실거린다. 고층건물들로 둘러싸인 한 건물 위에 남자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서있다. 작가 자신일까. 흰 셔츠 차림에 넥타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회사원인 듯한데, 잘 모르겠다. 박영균의 2002년 작 <광장의 기억>은 2002년 월드컵 당시의 응원 열기를 포착한 것인데, 한국 미술에서는 보기 드문 장쾌한 스펙터클을 선사한다.
  
그런데 이 작품 속의 남자는 왠지 1987년 6월항쟁 당시의 넥타이부대를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1987년의 넥타이부대가 2002년의 월드컵을 보면서 감개무량해 하는 것을 표현한 것일까. 1987년과 2002년 사이의 15년 동안에 민주화와 스포츠강국을 이룬 조국을 보면서 감흥에 젖어 있는 것일까. 그런데 남자의 표정이 묘하다. 흥분보다는 차라리 낯선 당혹감이랄까 어떤 씁쓸함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그가 느끼는 당혹감의 이유는 무엇일까.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높은 바위 위에 올라 등을 돌린 채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산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19세기 독일의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1818)이다. 프리드리히는 종교적 엄숙함마저 느껴질 정도로 고독하면서도 신비한 분위기 속에서 자연의 숭고를 전시한다. 숭고는 주체의 인식을 압도하는 커다란 대상에게서 느끼는 특유의 미적 경험이다. 따라서 그것은 재현 불가능한 경험이기도 하다. 그러나 프리드리히의 낭만주의 회화는 북유럽 특유의 감성으로 숭고미를 표현해낸 최고의 사례로 꼽힌다.  

  프리드리히에게 자연이 숭고의 대상이라면 박영균에게는 역사가 숭고의 대상이다. 프리드리히에게는 위대한 자연이, 박영균에게는 거대한 역사가 주체의 인식을 넘어서는 숭고한 감정을 선사해주기 때문이다. 차이가 있다면 프리드리히의 숭고가 차가운 감성 속에 응결되어 있는데 반해, 박영균의 숭고는 용광로의 쇳물처럼 끓어 넘친다는 점이다. 프리드리히에게는 구름 안개의 바다(雲海)가, 박영균에게는 사람의 바다(人海)가 그렇다.

  박영균의 그림은 회화적이다. 흔히 민중미술은 단조롭고 투박하다는 인상을 주는데, 박영균의 그림은 그렇지 않다. 빨강, 분홍, 보라, 파랑 등의 자극적인(?) 색채가 자주 등장하는 그의 화면은 차라리 색기(色氣)가 느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풍부한 색채와 터치로 그려진 그의 그림은 그래서 ‘픽처레스크(picturesque)’하다. 18~19세기 영국 풍경화에서 보듯이 ‘픽처레스크’는 말 그대로 ‘그림 같은 그림’으로서 자연의 풍광을 아름답게 그려낸 풍경화에 어울리는 개념이다.

  박영균의 그림도 일종의 풍경화이다. 하지만 프리드리히의 숭고 회화나 영국 풍경화와 달리 박영균의 풍경화는 자연 풍경화가 아니다. 박영균의 풍경화는 ‘사회적 풍경화’이다. 그것은 그의 그림이 스틸 사진처럼 사회적 풍경을 하나의 프레임에 포착해낸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틸이라고 하더라도 정물화처럼 정지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움베르토 보치오니의 미래파 회화처럼 강렬한 운동감을 보여준다. 화려한 색채와 운동감, 이것이 박영균식 사회적 풍경화의 양식적 특징이다. 이는 결국 그가 사회와 역사로부터 주체의 인식을 뛰어넘는 어떤 거대함을 느끼고 그것을 하나의 화면에 응축시킨 결과 빚어낸 역사적 숭고 회화의 모습인 것이다.



-386스러운, 너무나 386스러운. 그러나
박영균은 386스럽다. 그는 386세대 민중미술가의 전형이다. 어쩌면 그의 세계관은 386의 그것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는 참으로 부지런하게 살아왔다. 실천적인 미술가로서 열심히 현실 참여도 하고 작품 제작도 해왔다. 촛불집회, 대추리, 통일, 4대강, 한진중공업, 강정마을, 소녀상, 소비사회 비판, 환경 문제... 1980년대 말 이후 그가 관심 갖지 않은 사회적 이슈는 찾기 어려울 정도로 그는 행동에서건 작업에서건 참 열심히 실천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 그에게 그림은 실천의 일환이다. 그는 민중미술가이고 리얼리즘 작가이다. 그런데 그의 그림은 리얼리즘 계열에 속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순한 객관주의 회화는 아니다. 그의 그림에는 언제나 어떤 주체 또는 주관성이 개입되어 있다. 그것은 작가 자신이거나 어떤 인물 또는 인형이나 사물을 통해서 확인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림 내용과 직접 상관없는 형상이나 오브제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어쩌면 히치콕식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맥거핀’이거나 ‘낯설게 하기’일지도 모른다. ‘낯설게 하기’는 대상에 대한 주관적 몰입을 방해하기 위한 장치이지만 거꾸로 주관성의 개입을 통해 객관성을 교란시키기도 한다. 따라서 그에게 현실은 단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주체에 의해 경험되고 관찰되고 매개된 현실이다. 많은 리얼리즘 계열 작가들이 객관적으로 규정된, 마치 하나의 정보와도 같은 현실을 별다른 성찰 없이(?) 그려왔다면, 박영균의 리얼리즘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철저히 매개된 객관이자 경험된 현실이다. 그것을 주재하는 것은 주체이다. 주체의 경험적 성찰이자 성찰적 경험이다.

  1970년대 미국의 미술 평론가 톰 울프는 『그려진 언어(The Painted Word)』라는 책에서 현대미술이 미술 담론의 도해(圖解)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했었다. 서구의 현대미술과는 다르지만 민중미술도 많은 경우 ‘그려진 이념’으로서 이념의 단순한 도해에 지나지 않는 것이 많았다. 박영균의 그림이 그러한 ‘물화(物化)된’ 리얼리즘과 궤를 달리 하는 것은 앞서 지적했듯이 주관성의 개입 때문이다. 현실은 주체 바깥에 객관적으로 존재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객관이 주체와 무관하게 독립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은 객관적인 것만큼이나 주체에 의해 적극적으로 구성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박영균에게서 객관적 리얼리즘과 주관적 구성주의는 만난다. 그래서 박영균의 리얼리즘은 현실과 주체가 변증법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리얼리즘이다. 나는 이를 ‘성찰적 리얼리즘’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저기에서 내가 있는 이곳까지>(2012~14)와 <그곳으로부터 이곳으로>(2012) 등의 작업이 잘 보여준다.



-후일담미술에서 ‘성찰적 리얼리즘’으로
서른, 잔치는 끝났다, 라고 누군가 말했을 때 박영균은 생각했을 것이다. 과연 그 잔치는 무엇이었던가, 하고. 객관적 현실에 대한 주관적 기억과 의식은 박영균의 그림을 우선 후일담미술로 만든다. 하지만 박영균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그러한 기억과 의식에 물음을 던진다. 그것은 과연 명료한 현실이었느냐고. 여기에서 비로소 박영균식의 ‘성찰적 리얼리즘’이 솟아오른다.

  1990년대 후일담문학의 예광탄을 쏘아올린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표제작이 원래 <마지막 섹스의 추억>이었다는 잘 알려진 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는 선정적 호기심을 넘어서 묘하게 뒤통수를 치는 것이 있다. 왜냐하면 ‘마지막 섹스’에 대한 기억은 발기불능의 현실에 대한 우회적 고발이자, 그래서 음란한 것이고 또 그래서 검열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로지 현실에 대한 발기불능을 통해서만 ‘마지막 섹스’를 회억(回憶)할 뿐이다. 사실 1990년대 전체가 1980년대의 후일담이라고 할 수 있는데, 86학번으로 90년대에 들어서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하게 된 박영균에게는 출발 자체가 후일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물론 80년대의 추억을 넘어서, 사회적 모순과 갈등은 여전했고 실천적인 과제들은 90년대와 2000년대에 들어서도 넘쳐났다.

  달리 질문해보자. 박영균에서 현실과 현장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그는 실천적인 미술가로서 언제나 현실의 현장에 있고자 했다. 그러나 점점 현실은 미디어를 통해서 경험하게 되고 그리하여 그에게는 점차 작업실이 현실의 현장이 되고 있다. <저기에서... >와 <그곳으로부터...> 시리즈는 이러한 현실과 현장의 관계에 관한 물음이다. 무엇이고 현실이고 무엇이 현장인가. 사회적 투쟁의 현장과 나의 삶의 현장은 어떻게 다르고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그래서 그는 사회적 현실과 자신의 삶의 현장 사이를 왕복한다. ‘쩌으기’ 현실로부터 ‘여으기’ 현장까지. 또는 ‘여으기’ 현장으로부터 ‘쩌으기’ 현실까지. 무엇이 더 중헌디?

  또 하나, 이제 이러한 질문을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이유의 하나는 386이 더 이상 ‘저항하는 주체’가 아니라 ‘지배하는 주체’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권력이 되어버린 386을 과거 민주화 운동 시기의 그들과 똑같이 볼 수는 없다. 그리하여 민중미술의 추억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자칫하면 그것은 그저 하나의 후일담미술로 액자화 될 위기에 처했다. 아니, 이미 많은 민중미술이 액자가 되어 여기저기에 걸리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박영균은 박영균을 본다. 개인적 자아 박영균은 사회적 자아 박영균을 본다. 박영균의 혼란은 계속된다. 민주화의 성취와 역설. 과연 그는 계속 386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민주화를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근대화를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닐까. 민주화조차도 근대화의 하위범주인 것을. 나는 박영균에게서 1980년대 질풍노도의 시대 이후를 사는 한 사람의 개인을 발견한다. 나 역시 그랬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프리드리히의 방랑자는 높은 산 위에서 구름바다를 내려다보면서 비로소 자신을 주체(고독한 개인)로 깨닫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역사적 숭고와 사회적 실천 앞에 선 박영균 역시 그렇게 해서 한 사람의 근대적 주체로 탄생한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근대화보다 민주화가 먼저 되어버린, 그리하여 민주주의가 전근대의 늪에 빠져버린, 그런 것이 진짜 문제인 것은 아닐까. 근대화 되지 못한 사회의 민주화란 고작해야 감상적인 후일담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후일담미술의 화자(話者) 박영균과 ‘성찰적 리얼리즘’의 화가 박영균을 달리 봐야 한다. 그래서 박영균과 박영균 사이를 봐야 한다. 386 작가 박영균과 성찰적 자의식의 소유자 박영균 사이에서만 오로지 시대정신의 균열과 우회적 접합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영균 개인전 <들여다 듣는 언덕>, 부산민주공원, 2020. 11. 21.~12. 31. 전시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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