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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보라색 언덕 너머 Beyond the purple hill>보라색 언덕 너머, 하늘 끝까지 따르리라-김허경(미술비평)
mygrim ( HOMEPAGE )11-29 23:09 | HIT : 627
                                           보라색 언덕 너머, 하늘 끝까지 따르리라

                                                                                                            김허경(미술비평)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 세계, 우리의 눈앞에 보이는 대상의 존재 방식을 회화의 세계에서는 어떠한 논리로 설명할 수 있는가. 박영균은 현실을 바라보는 경험의 공간이자 관계성을 확인하려는 측면에서 2021년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작가는 《보라색 언덕 너머》라는 이번 전시 명을 두고 “골목, 현실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저 너머에 있는 어떤 희망”이라고 말한다. 코로나 시대에 사는 사람들, 작가의 내면에 존재하는 도시 공간, 과거의 시간, 보이지 않는 관계, 드러나지 않는 연결…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담은 보라색 풍경이다.
먼동이 틀 무렵, 집을 나선 작가는 좁은 골목 사이를 터벅터벅 거닐다 자신의 작업실을 향한다. 15년을 거의 매일 같이 오가는 길목을 걷다 보면, 낡은 연립주택의 비좁은 계단에 앉아 있는 낯익은 할머니의 모습과 담장 너머 주방에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불빛을 가로질러… 문이 굳게 닫힌 채 적막감이 흐르는 교회 앞 모퉁이에 다다른다. 작가는 어김없이 하늘 향해 곧게 뻗은 언덕 너머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잠시 차오르는 숨소리를 고르고 비탈진 언덕으로 걸음을 내딛는 순간, 고요한 아침을 깨우는 ‘군중의 함성’이 귓전에 맴돈다.

     “오랜 시련에 헐벗은 저 높은 산 위로, 오르려 외치는 군중들의 함성이
      하늘을 우러러보다 그만 지쳐 버렸네(중략)
      저 높은 산에 언덕 너머 나는 갈래요, 저 용솟음치는 함성을 쫓아갈래요.
      하늘만 바라다 시들어진 젊음에, 한없는 지혜와 용기를 지니게 하옵소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당신의 뜻이라면 하늘 끝까지 따르리라

  박영균은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동안 1980대 민주화 투쟁의 현장을 가로질러 교회 안 ‘구국기도회’에서 울려 퍼졌던 ‘군중의 함성’이라는 노랫소리를 내내 중얼거렸다. ‘군주의 함성’은 고난 속에 피어난 민주주의 노래이자, 억압과 착취 속에서 소외된 삶을 살다간 사람들의 간절한 기도이다. 작가의 바람은 보라색 언덕 너머 하늘까지 온전히 닿을 수 있을까.
독일의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에 따르면 참 믿음,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우리 혹은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궁극적인 관점에서 ‘하나’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하나’로 통합하려면 만인과 만유(萬有)의 조화, 대립물(對立物)의 일치를 논증함으로써 자신의 사명감과 존재의미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작가는 대상의 본질적 관계를 파악하고 동시에 현실을 직관하기 위해 존재하는 모든 것을 보랏빛 색채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빨강과 파랑의 대립, 모순의 조화
  제목에서 암시하듯 총 7점의 작품은 생명력을 상징하는 빨강과 냉정하고 이성적인 파랑이 적절하게 혼합한 보라색 풍경이다. 화면 전반에 주조된 보라색은 원색인 빨강과 파랑이 섞인 색이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빨강과 파랑은 극단적으로 대립하지만, 빨강과 파랑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는 색이다. 즉 ‘모순의 조화’로 이루어진다. 박영균은 일상으로의 회귀, 일상을 가능케 하는 ‘공존’의 가치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유기적 관계, 연대를 표현하기 위해 빨강과 파랑을 섞은 보라색으로 화면 전체의 조화를 시도하였다. 여기서 작가가 팔레트 위에서 배합한 색(色)은 분별과 관념으로 대상에 채색하는 의식작용을 의미한다. 이로써 보라색은 작가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대상이 된다. 박영균이 캔버스에 구사한 ‘빨강과 파랑의 혼합’으로 생성되는 보라색은 ‘대립물의 일치’, ‘모순의 조화’와 상응한다.

“스무 살의 기억은 되게 크고, 그때의 짧은 기억으로 평생을 사는 것 같아요.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지 자기 삶의 방식을 만들어 줬어요. 색채로 표현하자면 밝고 맑은 (혁명적 낙관) (…) 그래서 이렇게 흘러오지 않았나 싶어요”

“2014년, 15년, 17년에 우리가 느꼈던, 그 시대의 공기?
그 시대의 흐르는 어떤 것들이 비닐과 보라색이 아니었을까?
보라색은 ‘여기를 보라’, ‘여기를 보세요’, ‘여기 사람이 있어요’
뭐 아니면 ‘내가 있어요’. 그런 의미의 보라도 있고, 그냥 색 자체의 보라.
아, 그래서 보라색으로 광장의 이야기, 상처받은 사람들의 이야기,
그런 것들을 나 혼자 그리지 않았을까?”
  
작가는 2021년 비로소 무한한 하늘, 언덕 너머의 보이지 않는 세계와의 연결 고리를 화폭에 담고자 밝은 햇빛, 맑고 신선한 공기의 색과 상응하는 보라색을 펼쳐낸다. 어린 시절의 그리움, 향수, 혁명, 투쟁, 저항, 슬픔, 불안, 두려움, 신비로움… 이 모든 것들은 작가의 자의식 속에 배합되어 꿈틀거리는 붓 터치와 함께 약동하는 생명력을 발현한다. 작가에게 보라색 너머의 풍경은 붉게 타오르던 태양이 서서히 어둠 속으로 물들어가는, 바로 노을이 질 무렵의 하늘빛, 또는 새벽을 여는 맑은 공기의 빛이다. 보라색이야말로 아득한 언덕너머 하늘 끝에 닿을 수 있도록 물질과 영적 세계의 경계선을 초월할 뿐 아니라 현실과 미지의 공간을 넘나들게 한다.    

시대와 현실의 간극, 예술과 현실 사이

박영균은 1980년대 후반부터 줄곧 치열한 현장 활동을 통해 선전 선동의 도구였던 민중미술을 몸소 실천한 까닭에 한국화단에서 리얼리즘을 구현한 중견작가로 손꼽힌다. 스무 살 무렵 시작된 경희대 벽화작업을 시작으로 교육현장, 대추리, 촛불집회, 통일, 4대강, 한진중공업, 강정마을, 소녀상, 세월호 집회, 광화문 광장, 환경문제 등 현실에 직면한 문제에 따른 명백한 진상 규명을 위해 참여자, 관찰자로서 역사적 현장을 기록해 왔다.
그러나 언제부터일까. 박영균은 직접적인 현장 활동과 생생한 자신의 증언을 지속해서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두고 스스로 현장의 관찰자였을 뿐이라고 치부해 버린다. “내가 그린 그림이 아니라 시대가 요구한 그림”을 그린다고 확고한 신념을 밝혔던 박영균은 행동의 주체적 체험과 관찰자로서 매개한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시대’와 ‘현실’이라는 틈, 메울 수 없는 간극에 부딪히고 만다. 직접적인 체험에서 파생되는 사회 속 미술가의 활동과 현장에서 벌어지는 격차에서 비롯되는 실제적인 역할의 거리는 작가에게 자기 성찰적 모순을 안겨주었다.
그렇다면 작가는 주체자인가. 매개자인가. 박영균은 역사적 현장에 대한 다층적인 경험의 주체이자 미술가로서 ‘사회적 역할’의 거리, 상호 관계성에 주목하고 자율적인 사고를 통해 현실을 새롭게 조망하기 시작한다.
<2016년 보라 Ⅱ>는 그림을 그리는 주체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탐색한 작품으로 이번 전시 명의 색채인 보라색에 관한 해석의 단초를 제공한다.
<2016년 보라 Ⅱ>와 <벽보 선전전>(1990)의 경우 제작 시기는 다르지만 같은 연결 선상에 있다. 1990년도에 발표했던 <벽보 선전전>은 골목 모퉁이에서 벽보를 붙이는 순간의 긴장감을 포착한 작품인데 당시 ‘망을 보았던’ 20대 자신의 모습을 차용해서 2016년 ‘망보는’ 50대의 박영균의 모습으로 다시 소환했기 때문이다.  
박영균은 화가의 작업실(현장)과 과거의 역사적 현장, 즉 양쪽의 시점을 결합하는 방식을 적용하여 주체자인 자신의 작업실 내부와 긴박했던 투쟁 현장의 시선을 서사적으로 연결했다.     <2016년 보라 Ⅱ>는 작가의 존재성을 다시 획득함으로써 상반되고 모순되는 시점을 포착하고 색채를 통해 반발하고 부정하려는 변증법적인 논리를 내포하고 있다. 즉 서로 모순되는 것들을 결합함으로써 생겨나는 변화를 보랏빛 색채로 포용함으로써 시대와 현실을 대변하는 새로운 미학적 리얼리티를 제시하였다. 이제 작가는 단절된 시대적 사건이 아니라 삶의 지속적인 변화의 과정에서 시대성을 담보한 존재의 연관관계를 그릴 수 있는 자율적인 주체가 된다. 박영균의 작업공간은 주체적인 경험의 장소이자 현실의 실천적인 장이다.


보라색 언덕 너머의 풍경  
이번 전시에 선보인 <보라색 언덕너머Ⅰ>, <보라색 언덕 넘어Ⅱ>는 산업화 도시화 속에 삶의 구석진 자리, 사각지대에 놓인 계층의 삶, 사회적 취약구조로 단절되어가는 삶의 거리를 담은 풍경화이다. 작가의 일상과 밀접한 삶의 터전이 직접적인 그림의 화제로 등장한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가 미술가로서 시대와 현실의 갈래에서 더 이상 갈등하지 않고 ‘모순의 조화’에 천착하고 있음을 방증하기 때문이다.  
  <오후 4시 완벽한 여름 햇빛>, <푸른색 터널>에서는 개별적 존재성을 확고히 하면서 사물과 사물, 대상과 대상의 면밀한 균형감을 구축하고 있다. 보라색으로 물든 풍경은 사물 간의 거리, 대상의 위치를 앞에 두거나 뒤에 간격을 두고 배치함에 따라 원근의 깊이와 균형감각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대상을 채색하려던 의식의 상호 작용 때문에 하나의 사물을 이동시키면 나머지 부분이 흐트러질 것처럼 화면의 중심을 어디에 두었는지 명확하게 구별하기 어렵다. 이는 화면 속에서 하나의 대상을 집어 당기면 나머지 부분이 다 끌려 나오는 것처럼 서로 치밀한 연계 구조를 갖기 때문이다.
  그림에 등장하는 모든 대상은 오히려 ‘중심의 부재’로 인해 개별성을 상실하지 않고도 하나하나 유기적인 연결 구조를 유지하고 있으며, 더욱이 보라색의 향연과 붓의 자유로운 감각은 선과 색의 경계를 사라지게 함으로써 ‘모순의 조화’를 극대화한다.

박영균은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때보다도 사회와 인간의 관계를 명확하게 규정하고자 긴밀한 연계, 관계구조를 해석하는데 집착하고 있다.
2020년 11월, 비대면 가운데 발표한 <얼음의 눈물>은 바로 예술가의 고민과 우려가 담긴 현실‧ 사회참여적인 발언이기에 더욱 주목 받았다. <얼음의 눈물>은 시베리아 바이칼호수 너머 타이가 숲에 사는 몽골리안 샤먼의 문양 날개를 가진 늑대의 얼굴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하여 창조한 수호신이다. 유라시아에서 가장 큰 호수이자 아직도 원시상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바이칼은 설산에 둘러싸인 채 시리도록 푸른 물빛을 띠기에 우주 위성에서 보면 반쯤 감긴 푸른 눈처럼 보인다고 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담수의 5분의 1이 이 호수에 모일 만큼 수심도 깊고 수량도 풍부하다. 더불어 수직과 수평의 물이 교차하면서 호수의 가장 깊은 곳까지 산소를 운반하기 때문에 서식하는 수중생물들로 연중 활기를 띤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구의 온난화, 환경오염의 영향으로 점차 푸른빛을 잃어가고 있다. 작가는 생태계의 낙원인 바이칼 호를 통해 전 인류와 지구가 처한 치명적인 위기를 경고하고 있다. 이상기온, 지구온난화로 얼음이 녹아내린 지구, 체르노빌과 후쿠시마가 연상되는 원전사고의 모습도 보인다. 다가올 재앙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 지켜줄 수호신은 두 눈을 부릅뜨고 우리가 살아온 생활방식, 무지의 각성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던진다.  
  1990년대 박영균은 붓을 들고 현장에 뛰어들어 전투적인 투쟁을 했다면 2021년은 예술과 현실사이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모순의 조화’를 시도하고 있다. 현실 세계의 대상을 포함한 인간의 존재 방식, 나아가 인류의 역사, 전 지구적인 공간을 주시함으로써 그곳이 아닌 이곳에서, 보라색 언덕너머의 세계를 꿈꾸고 있다.
  박영균은 오늘도 보라색 언덕 너머, 맞닿을 하늘을 응시하며 어김없이 행보를 잇는다. 미래의 희망과 변화를 소망하는 ‘군중의 함성’이 닿을 때까지…, “당신의 뜻이라면 하늘 끝까지 따르리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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